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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한 단상…「민식이법」을 보며

 

【 청년일보 】 얼마 전 대학 동기로부터 「언어의 유혹」이라는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저자 도명수가“산다는 것은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것이다.

 

그런 언어를 갖고 있는 최응렬 교수님께 이 책을 드립니다.” 라는 친필 사인을 하여 직접 연구실까지 찾아와서 건네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나만의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저자의 머리글을 읽어보니 3,000페이지에 달하는 국어사전을 2년에 걸쳐 정독해서 유혹하는 언어 7,648개를 찾아냈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한글의 탁월한 가치와 영감을 전해 주기 위한 작업의 결실이 곧 글을 쓰는 것과 유혹하는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전문강사로 사내외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퇴직하게 되면 인생 3막을 읽고 쓰고 강의하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각오와 준비까지 착실히 다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언론 보도의 글을 읽거나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다 보면 유혹하는 언어나 말은 아니더라도 바른 글쓰기와 올바른 언어 사용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

 

광화문에서 서울시민을 지켜보고 계신 세종대왕도 나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청년들에게 바른 글쓰기와 언어 사용을 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직접 음식을 먹어보고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되는 데, 맛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한다. 하루 빨리 고쳐졌으면 한다.

 

우리들에게 제법 알려진 유명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낮춰 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표현도 바로 퇴출되어야 할 언어 사용이다.

 

자기의 친부모는 아버지, 어머니가 올바른 호칭인데,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하는 사람도 꽤 많다. 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면, 친부모를 친부모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는 셈이 된다.

 

문자 또는 카톡 사용이 늘면서 줄임말 사용도 넘쳐나고 있다. 맛점, 즐감은 물론 얼죽아, 학범슨 등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음료는 커피가 대세라서 나온 말 중에 얼어 죽을 것 같이 추운 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을 ‘얼죽아’라고 한다.

 

올해 아시아 축구연맹이 주관하는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AFC U-23 Championship)를 우승으로 이끈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김학범 감독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과 비슷하다고 하여 ‘학범슨’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경찰과 범죄 분야를 연구하면서 빨리 고쳐졌으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새롭게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법률명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민식이법」, 「하준이법」, 「해인이법」, 「태호ㆍ유찬이법」, 「한음이법」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 이러한 법률은 법전에는 없고, 우리나라의 법 감정에도 맞지 않는다.

 

범죄 피해자나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이름을 붙여서 법률명을 표기하는 전통은 미국이 대표적인 나라이다.

 

메건 법(Megan’s Law)은 1994년 7월 뉴저지 주에서 상습 성범죄자에게 희생당한 소녀 메건 칸카(Megan Kanka)의 이름에서 따온 법률로 주 정부가 의무적으로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제공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Volstead Act는 1919년 제정된 미국의 「국가금주법」(國家禁酒法 : National Prohibition Act)으로 하원 사법위원장 앤드류 볼스테드(Andrew Volstead) 의원의 이름에서 따온 법률명이다.

 

“어린이 생명안전 5개 법안”이라고 묶여서 불리고 있는 「민식이법」, 「하준이법」, 「해인이법」, 「태호ㆍ유찬이법」, 「한음이법」이 있다. 모두 기본적인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사고로 인해 희생된 어린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들이다.

 

이 법안들은 2016년부터 2019년도까지 오래전에 발의되었으나 「한음이법」을 제외하고, 뒤늦게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은 2019년 12월 10일, 「해인이법」과 「태호ㆍ유찬이법」은 2020년 4월 29일에 국회를 통과했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아산시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김민식 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에 단속 카메라(CCTV), 과속 방지턱, 신호등 설치를 의무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의무 부주의로 어린이 사망ㆍ상해 사고를 낸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나뉜다.

 

「하준이법」은 2017년 10월 경기도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경사진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이 굴러 최하준 군을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주차장법」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주차장법」 개정안은 경사진 주차장은 고임목 등 미끄럼 방지시설과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며, 시ㆍ군ㆍ구에서 주차장 경사도를 비롯한 안전관리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백화점과 놀이시설 등 주차대수 400대를 넘는 대형주차장의 경우에는 주차장에서의 보행자 보호를 위해 과속방지턱, 차량의 일시정지선 등 보행안전시설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아파트 단지도 ‘도로’에 포함시켰다.

 

「해인이법」은 2016년 4월 경기도 용인의 한 어린이집 맞은편 유치원 경사로에 기어(gear)를 제대로 하지 않은 SUV(Sports Utility Vehicle)차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밀리던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응급조치가 늦는 바람에 사망한 이해인 양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어린이 이용시설 관리주체 또는 종사자가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에게 질병, 사고 또는 재해 등으로 위급 상태가 발생한 경우 즉시 응급의료기관 등에 신고하고 응급조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였다.

 

또한 행정안전부장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실태조사 및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아울러 행정안전부장관이 5년 마다 어린이 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태호ㆍ유찬이법」은 2019년 5월 인천 송도국제신도시의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로 사망한 김태호ㆍ정유찬 군의 이름을 따서 발의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말한다. 이 법안은 어린이 통학버스에 대한 정의를 ‘어린이들이 탑승하는 모든 통학차량’으로 확대한 것이 주 내용이다.

 

즉, 어린이 통학버스 운용시설 범위를 현행 6종에서 18종으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통학버스 동승 보호자를 안전교육 대상에 추가하였다. 여기에 동승 보호자 미탑승 등 어린이 통학버스 관련 의무위반에 대해 벌금 등 제재를 강화하는 것과 동승자의 좌석 안전띠 착용 확인 및 안전운행기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한음이법」은 2016년 7월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던 박한음 군이 동행 교사의 방치로 통학버스 안에서 숨진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법안이다. 어린이 통학버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안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어린이 통학버스에 차량 내부에 어린이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도록 의무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2016년 11월 국회를 통과해 시행 중이다.

 

어린이 통학버스에 영상정보처리기기 장착 의무화 및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운영자ㆍ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벌금형에서 징역형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수학교ㆍ특수학급에 CCTV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기록된 영상정보를 최소 60일 이상 보관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는 「민식이법」, 「하준이법」, 「해인이법」, 「태호ㆍ유찬이법」 등의 법률명을 사용해도 이 법안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내용의 법률인지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내용의 법률인지 기억하지 못할 피해자의 이름을 법률명으로 표기하는 것부터 언론에서 먼저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

 

정확한 법률명 표기를 적극 권장하며, 부득이 「민식이법」, 「하준이법」, 「해인이법」, 「태호ㆍ유찬이법」과 같은 법률명을 표기해야 한다면 적어도 정확한 법률명을 표기하고 괄호 안에 「민식이법」, 「하준이법」, 「해인이법」, 「태호ㆍ유찬이법」을 병행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어린이들의 이름을 따서 법안을 제정하는 것보다 더 우선할 것은 운전자들에게 안전운전을 체득하게 하는 것이다. 이들 사고를 살펴보면 관련 법안이 없어서 발생한 사고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법의 이름으로 남은 어린이들은 안전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량 주차 시 기어를 제대로 해 놓았는지(「해인이법」, 「하준이법」), 운전자가 속도위반을 하지 않았는지(「태호ㆍ유찬이법」), 차량 탑승 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보행 시 좌우를 살피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졌는지(「태호ㆍ유찬이법」, 「민식이법」), 어린이의 안전을 책임지는 담당자가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고 있는지(「한음이법」) 등 기본적으로 정해진 사항들을 준수하였다면 어린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더 이상 희생되는 어린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정된 이러한 법률이 강력한 처벌에 앞서 운전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안전한 교통문화를 정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최응렬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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