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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나쁜 인플레이션'의 귀환?···고통은 서민의 몫

원자재 가격 상승, 코로나 19로 풀린 천문학적 유동성 맞물려 인플레 공포
경기 회복 동반하지 않은 인플레이션은 '치명적'···대비책 확실히 마련해야

 

【 청년일보 】 역사적으로 전쟁과 같은 재앙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방아쇠를 당기기 일쑤였다. 군사적 충돌이 공장과 철도 등 중요한 기반시설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공급이 부족해지거나 병목현상을 빚게 되면 물가(物價)가 오를 수밖에 없다. 

 

스페인 독감 같은 전염병도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3년간 유행한 스페인 독감으로 3900만명이 숨졌고, 사망률은 2.0%에 달했다. 특히 전 세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6%, 1인당 소비를 8.1% 감소시켰다. 반면 인플레이션율은 최대 20%포인트 높아졌다. 록다운(봉쇄) 기간에 억눌린 수요와 생산 차질, 그리고 무제한의 돈풀기에 의한 결과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대부분 안 좋은 기억과 인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아직도 진행형인 만큼 인플레이션 우려는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다. 스페인 독감의 데자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도 인플레이션의 폐해가 목격되는데, 바로 1970년대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금과 달러의 교환 중단을 선언한다. 금본위제를 폐지한 것인데, 이로 인해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해체된다. 그후 몇년 동안 달러 가치가 15% 정도 떨어지면서 수입물가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정부 지출도 유지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됐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 고조된 중동 위기는 석유금수 조치로 이어져 유가가 오르고 경제가 침체됐다. 1974년과 1979년에는 인플레이션이 두 자릿수 수준까지 도달했으며, 10년 동안 평균해도 7.1%에 달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경기 침체와 실업률 상승을 우려해 중앙은행에 금리를 낮게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이 때 자주 언급된 용어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조어다. 여기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면 슬럼프플레이션(slumpflation)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불황기에 물가가 하락하고, 호황기에는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불황과 인플레이션이 공존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즉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원인은 크게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수요 측면, 즉 총수요의 증가로 발생하는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가장 큰 요인은 통화량이다.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시중에 돈이 풍부해지고, 상품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이 때 상품의 수요가 증가한 만큼 상품 공급이 늘어나지 못하면 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총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돈을 갖고 있기 보다 물건을 사 놓는 것이 유리하다. 이 때 불필요한 가수요가 발생하고, 가수요의 확산에 따른 총수요의 증가는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귀착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실제 인플레이션으로 실현되는 셈이다.

 

공급 측면에서 기인하는 인플레이션을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나타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 수입물가 상승은 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는 전반적인 생산자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 결국에는 시차를 두고 최종 소비자 가격, 즉 소비자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요즘 들어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는 일차적 요인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다. 지난해 1분기 만 해도 배럴당 30달러에 그쳤던 유가는 최근 2배 상승한 6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구리와 철광석 등 광물은 더욱 가파른 상승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리 가격은 지난 7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톤당 1만36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1년 2월의 1만190달러 이후 10년 3개월 만의 최고가다. 철광석 가격도 톤당 2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 3월의 톤당 150달러에 비하면 한 달 새 30% 넘게 오른 것이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는 것은 코로나 19 사태에서 회복된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으며 실물경제가 회복되면 제조업 생산이 늘어나면서 원자재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원자재 공급의 불안정도 한 몫하고 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와 철광석의 주요 생산국인 인도가 코로나 19 확진자 급증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철광석 생산국인 호주와 주요 수요국인 중국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철광석 공급 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철광석 사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우리나라에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철강 소비가 많은 조선업계와 자동차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양상이다. 철광석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열연강판과 후판 등 대부분의 철강 가격이 올랐다. 이에 철강업계와 자동차업계는 지난달 후판 가격을 톤당 10만원 가량 인상키로 합의했다. 특히 자동차업계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정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강 가격 상승 랠리까지 맞은 상태다.

 

최근 인플레이션에 공포라는 말이 덧붙여져 '인플레 공포'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은 원자재 시장의 불안이 미국 뉴욕증시에 옮겨붙어 주가 급락 등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로 하여금 조기 긴축에 나서 금리인상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금리와 주가는 역(逆)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금리가 인상되면 기업들은 필요한 돈을 빌리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가 감소해 성장이 둔화된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비용도 늘어난다. 이는 기업 실적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주가를 끌어 내리는 요인이 된다.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다. 금리가 인상되면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위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은행예금 등 안전자산을 찾게 된다. 은행에 넣어두면 손실 위험을 무릅쓰고 주식 투자를 할 필요가 줄어들어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 한마디로 금리인상은 증시의 대표적인 악재인 것이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착한 인플레이션'도 있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소비가 늘어나면 산업재와 소비재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기업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또한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다시 투자와 고용 증가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현재 미국은 착한 인플레이션에 가깝다. 미국의 물가상승은 코로나 19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경기 회복에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까지 더해져 나타난 전형적인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착한 인플레이션은 경기 부양과 복지를 위해 지출한 국가 부채를 탕감해 주는 효과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에 가깝다. 원자재의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국내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는데 물가만 오르면 감당하기 어렵다. 불황에 물가가 오르면 취약 계층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 규제 강화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후유증으로 고용시장은 얼어붙었고, 성장 동력 역시 약화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는 인플레이션은 서민에게 쓰나미급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한 금리인상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를 잡겠다고 섣불리 완화적 통화정책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가계부채가 1726조1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9% 급증하는 등 가계, 정부, 기업할 것 없이 모든 경제주체는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다. 대출의 70% 이상이 변동금리에 연동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도 추가 이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또한 지난해 우리나라 주요 기업 100개 가운데 18개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시장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낳을 수 있다. 경기와 물가를 놓고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 19 사태로 수많은 자영업자와 영세기업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상태다. 서민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 고삐 풀린 돈은 부동산과 주식, 심지어 암호화폐에까지 몰려 자산이란 자산에는 모두 거품이 끼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통제 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이 인플레이션, 금리인상 같은 계기를 만나면 한꺼번에 큰 격랑이 돼 몰아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1970년대 이후 유의미하게 위험한 인플레이션 환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워낙 장기간 저물가를 경험했기에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인플레이션 걱정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나쁜 인플레이션'은 언제든 귀환할 수 있고, 이 경우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자영업자·영세기업·서민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활동에 미치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핵심적 요소는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뢰다. 정부 관료들이 잇따라 "큰 문제 없다"며 톤 다운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은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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