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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금융사기 너머의 '의혹'

라임과 옵티머스 사모펀드로 5782명의 투자자, 2조1825억원 피해
감사원, '솜방망이' 징계···권력형 비리 의혹 '꼬리 자르기'란 지적도

 

【 청년일보 】 일반적으로 소액 개인투자자는 정보 열위에 있다. 기관투자자 같은 전문가 그룹과 동등한 입장에서 직접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간접투자다. 전문가 그룹에 투자를 의뢰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펀드(fund)다. 개인투자자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형성한 자금을 여러 종류의 자산에 투자한 후 얻은 수익을 투자 지분에 따라 배분받는 것이다. 

 

펀드는 크게 공모(公募)펀드와 사모(私募)펀드로 나뉜다. 이 가운데 공모펀드는 자산운용사가 공개적으로 50명 이상의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아 운영한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규제와 감독이 엄격하다. 분산투자 등 자산운용 규제, 투자설명서 교부 의무, 외부 감사 등이 실시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펀드 공모에 나서기 전에는 약관을 금융감독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자산을 운용할 때는 동일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고, 동일 회사가 발행한 주식의 20% 이상은 매입할 수 없다. 정기적으로 성과 보고서도 공시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사적(私)으로, 즉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상당한 수준의 재력가는 물론 기관투자자 역시 투자할 수 있다. 모집 대상도 49명 이하다. 공모펀드와 달리 사인(私人)간 계약 형태를 띈다.

 

그런 만큼 규제와 감독이 약하고, 자유로운 자산 운용이 가능하다. 펀드 자금의 100%까지 한 종목에 투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수합병(M&A) 또는 인수합병 시도에 대한 경영권 방어 등에도 활용된다.

 

지난 1998년 도입된 사모펀드는 2015년부터 지속된 규제 완화로 급성장한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산업과 벤체산업 활성화를 꾀한 것이다. 사전등록제를 사후보고제로 바꿔 자산운용사의 시장 진입도 용이하게 만들었다. 문턱을 대폭 낮춘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9년 말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를 합친 국내 자산운용사 수는 모두 291개다. 이들이 만든 펀드의 숫자만 해도 1만5000개 이상이다. 

 

사모펀드의 총 순자산은 416조원으로 공모펀드의 242조원을 크게 앞선다. 총 순자산은 운용 수익을 반영한 펀드의 실제 가치를 말한다. 펀드에 모집된 금액, 즉 총 수탁고 역시 사모펀드가 412조원으로 공모펀드의 237조원에 비해 두 배에 육박한다.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는 지난 2015년 19개에서 2020년 5월 223개로 급격히 늘었다. 상전벽해인 셈이다. 

 

자산운용사는 투자자에게 직접 사모펀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행·증권사 등에 위탁하고, 판매 수수료를 지급한다. 이는 규제 완화 당시 사모펀드에 대한 최소 투자금을 1억원으로 낮추고, 은행·증권사 등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사모펀드를 마치 공모펀드처럼 판매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외국에서는 사모펀드의 판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모펀드를 만든 자산운용사가 직접 기관투자자와 고액 자산가 등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사모펀드 판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개념인 셈인데, 라임이나 옵티머스 펀드 사태에 은행과 증권사 등이 얽힌 이유다.

 

판매사와 자산운용사는 사모펀드의 운용 수익과 무관하게 돈을 번다. 은행과 증권사는 사모펀드를 팔아주는 대가로 투자금의 2%를 판매 수수료로 뗀다. 자산운용사는 0.5%를 운용 보수로 받는다. 사모펀드를 많이 팔수록 더 큰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갑(甲)인 판매사가 을(乙 )인 자산운용사에 수 많은 사모펀드를 주문 제작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경우 수익률을 조작할 유인도 크다. 은행과 증권사는 사모펀드를 만기 3개월 또는 6개월 등 초단기로 끊어서 팔았다. 판매 수수료를 더 많이 먹기 위해서다. 

 

반면 자산운용사는 펀드 자금을 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없는 비(非) 상장기업의 사모사채나 부실 상장사의 전환사채 등에 투자했다. 판매사와 자산운용사의 수수료 2.5%를 제외하고도 수익을 남기려면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니저 역시 투자 자산의 평가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받는 만큼 수익률 부풀리기에 사설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수익률 부풀리기에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데도 사모펀드의 만기는 짧다보니 자산운용사는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일종의 폰지사기(Ponzi Scheme)로 펀드런(fund run)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펀드런은 펀드가 부실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 투자자들이 환매를 위해 달려드는 현상으로 대부분 환매 중단을 야기한다. 

 

라임 사태는 지난 2019년 7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상장기업의 전환사채를 편법 거래하면서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10월에는 투자한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펀드런에 몰렸고, 결국 6200억원 규모의 환매 중단을 발표했다. 사모펀드는 환매를 중단하면 사실상 파산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지난해 2월 기준으로 라임자산운용이 돌려주지 못한 투자금은 1조6679억원이며,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는 4616명에 달한다. 49명 이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아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이처럼 많은 개인투자자가 연루된 것은 라임자산운용이 모자(母子)펀드 구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자펀드 1개당 개인투자자 49명을 모집하고, 173개에 달하는 자펀드가 4개의 모펀드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모자펀드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문제는 은행과 증권사 창구에서 '붕어빵'처럼 찍어낸 고위험 펀드 상품을 잘 알지도 못하고 팔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같은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가 49명 단위로 잘게 쪼개져 개인투자자에게 넘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펀드에 부실이 생기면 수 많은 자펀드 역시 손실이 불가피하다. 위험이 분산되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는 구조인 것이다.

 

옵티머스 사태는 라임 사태와 더불어 우리나라 2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꼽힌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안정적인 정부 채권에 투자한다며 2900명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NH투자증권이 사모펀드 의 80%를 판매했다.

 

연3%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안전한 사모펀드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펀드 자금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비상장 주식 등 고위험 자산에 투자됐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의 2대 주주이자 조직 폭력배 출신이 대표로 있는 페이퍼 컴퍼니에도 투자됐다. 특히 김재현 대표는 자신의 계좌로 수백억원을 횡령한 정황도 포착됐다.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지난해 6월 환매 중단과 함께 영업이 정지됐다. 7월에는 관계자들이 구속됐다. 옵티머스 사태로 인해 아직까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개인투자자는 1166명, 피해 규모는 5146억원이다. 라임 사태보다 옵티머스 사태가 더욱 '악성'인 것은 처음부터 투자자를 속였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 5일 금융감독원 실무 책임자 4명과 한국예탁결제원 직원 1명의 징계를 요구했다. 피해의 심각성에 견주어 보면 솜방망이 처벌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당시 책임자였던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과 원승연 전 부원장에게는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금융감독원 노조는 “사태의 책임이 있는 전 원장과 부원장은 빼고 단순히 업무를 수행한 부하 직원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금융감독원이 라임 펀드 부실판매 책임을 물어 은행과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에 비추어 보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꼬리 자르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꼬리 자르기는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한 차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라임 사태 당시에는 청와대 전 행정관, 여권 인사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연루돼 있다는 말이 나왔다. 옵티머스 사태는 제대로 조사할 경우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검찰은 “권력형 비리는 오도된 것”이라며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라임 사태 등을 배당받아 수사하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다. 금융사기 너머의 '의혹'이 수면 아래로 잠복한 것이다. 하지만 정치 지형도가 바뀌면 어떤 형태로든 밝혀질 공산이 크다. 그것이 권력형 비리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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