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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유통 거인 롯데그룹의 벽을 눕혀 다리 만들기

유통업계 화두는 '디지털 전환'···이베이코리아 인수 실패로 경쟁 구도 흔들
지라시 논란은 그룹 내 위기의식 발로···활로 모색의 새로운 모멘텀 삼아야

 

【 청년일보 】 지난해 12월 롯데그룹은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2015년 온라인 식자재 판매업체 마켓컬리를 설립한 김슬아 대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새벽 배송' 시대를 연 인물이다.  

 

당시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강연은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 대표와 각 사업부(BU) 부문장 등 임원 150여명이 시청했다. 주제는 '온라인 중심 유통업에서의 성공 노하우'였다. 관련업계는 유통의 전통적 강자이자 거인인 롯데그룹이 동종 업계의 신생 경쟁사 대표를 초청해 강연을 들은 것에 주목했다. 그만큼 롯데그룹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변화, 즉 혁신이라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계는 지금 커다란 변화의 골목에 서 있다. 주요 상권에 점포를 낸 후 부동산 가치 상승에 따라 자산을 불리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변화의 흐름을 한번 놓치면 만회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위기가 변수(變數) 아닌 상수(常數)가 된 셈이다.

 

최근 주요 유통기업이 자산을 매각해 온라인 부문에 투자할 실탄을 마련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것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이 화두(話頭)가 됐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이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몸집 키우기에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신세계그룹의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단순히 온라인 유통기업 하나를 품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룹의 미래를 디지털로 180도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1+1=2'가 아닌 그보다 훨씬 큰 부가가치를 창출, 온라인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신세계그룹의 '그림'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그룹은 3조4400억원을 동원했다.

 

GS그룹은 지난달 1일 편의점, 슈퍼마켓, 온라인 몰, 홈쇼핑 사업을 영위하는 통합 GS리테일을 출범시켰다. GS리테일에 GS홈쇼핑을 흡수시킨 것이다. 통합 GS리테일은 이를 통해 거래액 15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3위권 유통기업으로 올라섰다.

 

통합 GS리테일은 오는 2025년 온·오프라인 거래액 25조원 달성을 목표로 5년간 1조2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투자금은 이커머스와 풀필먼트 등에 투입된다. 풀필먼트란 유통기업이 물건을 판매하려는 업체의 위탁을 받아 보관, 포장, 배송, 재고관리, 교환·환불 등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를 말한다.

 

같은 날 출범한 KT그룹의 KT알파는 모바일을 주요 사업무대로 정한 상태다. KTH의 K쇼핑과 KT엠하우스의 모바일 쿠폰, 리셀 플랫폼, 온라인 광고 사업을 합쳐 모바일에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KT알파는 KTH와 KT엠하우스의 합병 법인이다. 

 

이처럼 국내 유통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다. 롯데그룹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롯데쇼핑이 이커머스 중심의 사업구조로 전환한 게 대표적이다. 백화점·마트·슈퍼 등 여러 사업부의 이커머스 담당 직원들을 온라인 통합 플랫폼 '롯데온'을 운영하는 이커머스사업부로 재배치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져나온 것이 지라시 논란이다. 지난달 말 '롯데그룹-유통BU 찌라시'라는 제목이 붙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며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은 것이다.  

 

속칭 찌라시로 부르는 지라시는 사설 정보지를 말한다. 지라시의 어원을 따져보면 어느 정도 특성이 그려진다. 지라시는 '뿌린다'는 뜻의 일본어 동사 지라스(散らす)에서 유래한다. 대중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배포되는 정보의 전달 방식에서 기인하는 명칭인 셈이다.

 

지라시의 출처는 늘 베일에 가려있다. 하지만 사내정보, 연예인 등의 단어들이 주는 은밀함과 호기심에 대중은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어디까지 진짜인지, 어디까지 허구인지 경계선이 없을 만큼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혼란을 키운다. 물론 증거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틀리면 말고 식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유언비어 또는 '카더라' 정보를 수사할 수는 없다. 이래저래 지라시 피해자는 '홍역'을 앓을 수밖에 없다.

 

논란의 지라시는 롯데쇼핑 등 유통 계열사들을 총괄하는 유통BU에 대한 인사 및 조직개편 전망을 담고 있다. 지라시 내용의 대부분은 거짓이다. 신동빈 회장이 8월 1일자로 그룹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부터 틀렸다. 통합 온라인 플랫폼 롯데온을 롯데쇼핑에서 별도 계열사로 분리할 예정이라는 내용 역시 마찬가지.

 

신동빈 회장은 지라시에 관한 보고를 받고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강경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내부 소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유통BU 내의 위기감이 지라시의 형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통은 화학과 더불어 롯데그룹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실적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룹 내에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유통업계가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온라인 중심의 소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커머스 시장은 지난해 160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188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온라인에 익숙한 10∼20대가 10년 내 주요 고객이 된다는 점에서 디지털 전환은 명운을 걸어야 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 최후의 승자가 시장을 독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실기(失期)를 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커머스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롯데그룹이 디지털 전환에 한 획을 긋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다면 롯데그룹은 롯데온을 앞세워 쿠팡, 네이버와 함께 이커머스 시장 3강 구도를 구축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결과론적인 접근이지만 롯데그룹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 지라시 논란 역시 이에 따른 위기의식의 산물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의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를 화(禍)로 보고 접근하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면 활로 모색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의 인권 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Walls turned sideways are bridges)'는 말을 인용, 임직원을 격려했다. 눈 앞의 벽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함께 벽을 눕혀 도약의 디딤돌로 삼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기업은 위기 속에서 나왔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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