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완독한 책이다. <시시한 역사, 아버지>(우일문, 2019, 유리창)가 주문후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착잡하다. 폭압적인 한국의 현대사가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어떤 수난과 고통을 가했는지 작가 아버지가 겪은 개인사를 통해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6.25는 끝나지 않았다.
이념에 가윌 눌린 아버지의 개인사를 통해 한국 현대샤의 아픔을 복원해낸 우일문
저 '시시한 아버지'표지. (사진=남궁은 기자)
작가의 아버지는 6.25 당시 인민군 치하의 상황에서 인민의용군으로 입대해야만 했다. 18세의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가족회의에서 ‘징발’을 결정하는 과정은 가화만사성을 앞세우는 대가족제하의 가부장제가 힘없는 한 개인에게 어떤 굴레가 되는지를 보여 준다(‘네가 가라, 인민의용군’ pp. 116-122).
이후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미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그를 따라다닌 것은 ‘민간인 억류자’라는 타이틀. 즉 ‘부역자’였다. 이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957년에 다시 한국군에 자원입대해 36개월을 복무했으나 그 전력은 상쇄되지 않았다. 그의 ‘국가는 원칙도 상식도 없었다’.
이후 공무원도 은행원도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던, 명문 도상(道商, 경기공립상업중학교. 경기상고의 전신) 출신의 아버지는 사회와 절연한 채 농투성이로 살아간다. 작가는 ‘아버지는 국가의 조롱과 멸시에 모욕과 수치를 느꼈지만 두려워서 평생 내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가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 화가 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시대에 대한 분노, 나라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그가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보다 보니 사회학자로서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복원한 노명우 교수의 <인생극장>(2018, 사계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개인사, 미시사를 통한 역사적 기록의 추적이라는 점에서 접점이 있다. 노명우 교수의 아버지는 1924년생. 우일문 작가의 아버지는 1932년생이다. 노 교수의 아버지는 일제 말기에 징병되어 나고야에서 복무한 것으로 나온다. 수난의 한국사를 그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살아간 주 무대는 파주 광탄, <시시한 역사, 아버지>의 주인공은 파주 탄현이다. 공통적인 것은 파주라는 지명일 뿐, 그들이 걸어간 행로는 다르다. 몇 가지 우연과 시기적인 차이가 사람마다 다른 삶을 교직하게 만든다. 두 작품 모두 아버지 세대에 대한 회한과 연민이 배어 있다.
6.25를 겪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보니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학도의 일기’를 표방한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1993 초판, 수정판 2018, 창비)도 떠올릴 수 있다. 그의 아들인 역사학자 김기협은 작가 우일문과 오랜 교분이 있는 사이다. ‘부모님의 모습을 밝힘으로써 그분들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하고(...) 그분들이 겪은 시대상을 밝히고 있다’는 글을 뒷표지에 수록했다. <역사 앞에서>, <인생극장>, <시시한 역사, 아버지>는 각각의 방법으로 한국 현대사를 소환하고 있다.
조기형(뉴스트러스트 편집위원/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