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부가 탄소중립 실현과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을 위해 수송용 수소 공급 능력을 연간 3만 4,000톤까지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정작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과 수요 절벽이라는 유례없는 엇박자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액체수소 플랜트 등 민간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등에 업고 생산 능력(Supply) 확보에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소비해야 할 수소차 보급 속도(Demand)는 인프라 부족과 안전성 논란에 발목이 잡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발맞춰 수천억 원 규모의 액화수소 시설을 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 수소를 소화할 상용차 전환이 지연되면서 기업들이 막대한 적자를 떠안아야 하는 일종의 '정책적 함정'에 빠졌다는 지적이 거세다.
수소 경제의 핵심 축인 수송용 수소 공급은 이론적으로 이미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SK E&S와 효성중공업 등 주요 기업들이 연간 수만 톤 규모의 액체수소 생산 설비를 구축하면서, 정부가 내세운 3만 4,000톤이라는 수치는 산술적으로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문제는 이 막대한 물량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있다. 기후부와 유관 기관은 2026년까지 보급될 수소차와 버스가 100% 가동되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해 수요를 산정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현재 도로 위를 달리는 수소 승용차는 모델 노후화와 충전 불편으로 인해 보급 대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대량 소비처인 수소 버스와 트럭 역시 충전소 확보 문제로 보급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별 수소 버스 도입 현황을 살펴보면 지역 간 격차가 뚜렷해 보급 정책의 불균형이 여실히 드러난다.
2024년 말 기준 인천(213대), 전북(141대), 경남(109대) 등은 선제적인 충전 인프라 구축을 통해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대구는 한 자릿수 도입에 그치는 등 수도권과 대도시조차 인프라 상황에 따라 온도 차가 극명하다.
서울의 경우 시내버스 7,000여 대 중 수소 버스는 단 1% 미만에 불과해 전국 최대 대중교통 수요처라는 명색이 무색한 실정이다. 이는 결국 도심 내 충전소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안전성 우려가 결합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 2019년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수소 탱크 폭발 사고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대중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으며, 이는 도심 내 수소 충전소 설치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인허가 단계에서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수소차 이용자들은 충전을 위해 외곽 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정부는 기체 수소보다 안전한 액체수소 기술 도입과 기존 주유소 부지를 활용한 융복합 충전소 확충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의 속도는 매우 더디다. 충전소라는 기초적인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량 보급을 독려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수소 유통 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한국석유관리원 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수소 수급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석유관리원 관계자에 따르면 "2026년 공급량 전망치는 신규 수소차와 버스가 100% 보급된다는 최대치의 가정하에 산정된 수치"라며 "실제 수요와의 괴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유통 전담 기관으로서 최대 수요에 대비해 공급 능력을 확인하고 유통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임무이지만, 현재 업체별 수소 생산량이나 공급 데이터가 법적으로 신고 의무 사항이 아니어서 정확한 통계 구축조차 어려운 초기 단계"라고 토로했다.
특히 "수소 생산 업체들이 원가 노출을 우려해 자료를 대외비로 관리하고 있어 알음알음 전화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실정"이라며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베이스의 부실함을 꼬집었다.
결국 현재의 수소 보급 전략은 민간의 선제적 투자에만 의존한 채, 공공 부문이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비대칭적 구조를 띠고 있다.
수소 버스 한 대가 승용차 수십 대의 역할을 대신하는 만큼, 지자체와 운수업체의 버스 전환을 강제하거나 파격적인 연료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생산 설비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관리원 관계자 역시 "장비나 설비 업체들은 이미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위축된 상태"라며 "정부의 강한 의지로 투자가 이뤄진 만큼 실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가 확보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