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국제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산업용 전기요금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으면서, 전력 다소비 업종을 중심으로 요금 인하 또는 한시적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전력 요금 체계 전반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한국자원경제학회와 공동으로 '산업경쟁력 강화와 전기요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과 정책 대안을 논의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연료비 급등의 여파로 7차례 인상되며 약 70% 상승했다. 특히 2023년 11월과 2024년 10월에는 주택용 요금을 동결한 채 산업용 요금만 인상되면서 기업 부담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후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이어가며 최근 배럴당 60달러 초반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급등기 이전 수준을 밑도는 가격대임에도, 연료 가격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조정단가는 2022년 3분기 이후 15분기 연속 kWh당 5원의 상한선에 묶여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한국전력공사는 2024년 약 8조원, 지난해에는 14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수준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에너지 가격 안정이 이어질 경우 올해도 대규모 흑자가 예상된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기업 경영의 한계선에 도달했다"며 "추가 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주택용·농사용 등 타 용도의 요금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해법으로 ▲ 최대 사용 전력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기본요금 산정 방식의 유연화 ▲ 산업용 요금 인하를 통한 기업 이탈 방지 ▲ 위기 업종에 대한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 완화 등 요금 구조 전반의 개편을 제시했다.
전면적인 요금 인하가 어렵다면 구조적 위기에 처한 업종을 중심으로 한 선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철강업계는 온실가스 무상배출권 축소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으로 3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탄소 감축을 위해 확대되고 있는 전기로 방식은 기존 고로 대비 전력 소모가 최대 10배에 달한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석유화학 산업 역시 고부가·첨단 소재 중심의 체질 개선을 위해 특례 전기요금제 등 비용 경감 장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산업 경쟁력 보호 차원에서 전기요금 인상 억제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올해부터 산업용 전기요금 상한제를 도입할 예정이며, 영국도 전기요금 인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전력 직거래를 활성화하고 전력 판매 경쟁을 확대해 구조적으로 전기요금을 낮추고 있다.
단기적인 요금 조정보다 근본적인 대안으로는 기업이 전력 공급 방식과 요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전력 산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전 외 전력구매계약(PPA) 확대, 전력망 투자에 대한 민간 참여 허용, 전력 판매 경쟁 도입 등을 통해 시장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탈(脫)한전'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는 현행 전력시장이 기업 수요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분산 에너지 시대에 맞춰 전기요금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원가와 연동되지 않는 전기요금 체계는 에너지 소비와 국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전력 산업 발전을 제약한다"며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서도 제도 개선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