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예심 미청구"...SK에코플랜트 "불가피한 사정"으로 면책 포석

등록 2026.04.23 08:00:00 수정 2026.04.23 08:00:10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공시로 무과실 강조해 최대주주 콜옵션 명분 확보 전략
최대주주 SK는 FI에 1조500억원 규모 정산 합의 추진

 

【 청년일보 】 SK에코플랜트가 지난 2022년 재무적투자자(FI)와 약정한 기업공개(IPO) 첫 단계인 상장예비심사 청구 기한을 넘기면서 사업보고서 공시를 통해 법적 책임을 선제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다.

 

SK에코플랜트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상장예비심사 미청구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불가피한 사정의 정체는 공시에 명시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중복상장 금지 기조를 사실상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최대주주인 SK는 FI에게 원금 8천억원에 4년치 수익률을 더한 약 1조500억원을 돌려주는 방향으로 합의를 추진 중이며, 내부 자금을 활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가 지난달 31일 제출된 2025년 사업보고서(제64기) 주석의 '43. 보고기간 후 사건' 페이지에는 "전환우선주 인수계약에 따르면 지배기업이 2026년 1월 21일까지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신청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지배기업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조항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어 "외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제출하지 못했으나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므로 계약상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상장예비심사 신청 기한인 2026년 1월 21일을 넘긴 행위에 대한 해석이다. 통상 기업과 투자자 간의 계약에는 특정 날짜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별도의 증거 없이도 기업의 잘못(고의 또는 중과실)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포함된다.

 

이 조항이 발동되면 SK에코플랜트는 투자자들에게 원금에 연 12%의 이자를 얹어 돌려줘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SK에코플랜트가 공시를 통해 불가피한 사정을 명기한 것은 이같은 조항에 대한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과정이라는 평가다. 1월 21일이라는 기한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기업의 태만이 아니라 정부의 중복 상장 규제 등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다.

 

나아가 이 논리는 최대주주인 SK가 매도청구권(콜옵션, 미리 정해진 가격에 지분을 되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명분이 된다. 계약상 회사의 잘못이 없을 때에만 대주주가 투자자의 주식을 다시 사올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공시를 통해 불가피함을 강조하는 행위는 발행사인 SK에코플랜트의 현금 유출을 막고, 동시에 대주주인 SK가 약 7.5%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에 지분을 회수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고도의 재무 전략이 담긴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FI 측이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 기조는 2025년 이전부터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 공론화된 사안으로, FI 측에서는 예측 가능한 리스크를 사측이 사전에 관리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업계에서는 공통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의 실체를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해석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되어 기존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쪼개기 상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SK가 지분 63.17%를 보유한 SK에코플랜트는 해당 규제의 직접적인 대상이다. 더욱이 올해 2분기 중 구체적인 심사 기준이 발표될 예정인 점을 고려하면 상장 추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외부적 사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중복상장 규제를 명시할 경우 향후 상장 재추진 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회계 위반도 상장 문턱을 높였다.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SK에코플랜트가 2022년에서 2023년 연결재무제표에서 미국 자회사 매출을 각각 1천506억원, 4천647억원 과대계상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측에 54억1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전 대표이사와 담당 임원에게는 각각 4억2천만원, 3억8천만원이 별도 부과됐다. 임직원을 포함한 과징금 총액은 62억6천만원이며 감사인 지정 2년 조치도 내려졌다. 거래소 경영 투명성 심사에서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대목이다.

 

공시를 통해 고의·중과실을 부인한 SK에코플랜트와 달리, 최대주주 SK는 협상 테이블에서 실리를 택한 모양새다.

 

복수의 IB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SK는 이음프라이빗에쿼티(PE)·큐캐피탈파트너스·프리미어파트너스·KY PE 등 FI 7개 사와 연 7.5% 내외의 수익률을 적용해 지분을 되사는 방식으로 합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산 구조를 보면 2022년 프리IPO 당시 발행한 전환우선주 약 6천억원과 구주 약 2천억원을 패키지로 묶어 재매입하는 방식이며, 4년치 수익률을 반영한 실제 상환 규모는 1조500억원 수준으로 관측된다.

 

재원은 내부 자금으로 충당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복수의 대형 증권사가 주가수익스와프(PRS)·주식담보대출 등 유동화 방식의 자금 조달을 제안했으나, 시장에서는 SK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지난해부터 그룹 계열사들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서 기관 투자자들의 SK그룹 익스포저가 확대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SK는 지난달 30일 SK바이오팜 보유 주식 담보 PRS 계약의 납입 대금으로 1조2천499억원이 유입돼 내부 자금 활용 여지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IB 업계 한 전문가는 "유책 사유를 부인하면서 최대주주가 직접 나서는 방식은 SK에코플랜트의 재무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FI 리스크를 정리하려는 그룹 차원의 결단"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유입 예정인 조 단위 자금을 즉시 투입함으로써 시장에 재무적 기초체력이 충분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저작권자 © 청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로35길 4-8, 5층(당산동4가, 청년일보빌딩) 대표전화 : 02-2068-8800 l 팩스 : 02-2068-8778 l 법인명 : (주)팩트미디어(청년일보) l 제호 : 청년일보 l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6 l 등록일 : 2014-06-24 l 발행일 : 2014-06-24 | 회장 : 김희태 | 고문 : 고준호ㆍ오훈택ㆍ고봉중 | 편집국장 : 안정훈 | 편집·발행인 : 김양규 청년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19 청년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youth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