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당 티키타카'는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부인 의사당대로 1번지에서 오가는 여야의 다양한 언어의 합을 포착합니다. 파편화된 발언의 나열을 넘어, 날 선 인용구 속에 숨겨진 정당의 전략과 정국 주도권의 향방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 청년일보 】 39년 만의 개헌 시도가 '불법 계엄 옹호'와 '명백한 위헌'이라는 극단적 언어의 충돌 끝에 결국 멈춰 섰다. 6·3 지방선거를 겨냥했던 국민투표 시나리오는 여야의 사활을 건 프레임 전쟁과 무제한 토론 예고에 가로막혀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헌법 조문을 둘러싼 의사당 설전은 이제 유권자의 선택을 넘어 22대 후반기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이번 개헌안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경우 48시간 이내 국회 과반 승인을 받지 못하면 계엄 효력이 상실되도록 하는 계엄 통제 규정과,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민주 이념을 명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표결 하루 전인 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부분 개헌'과 '불법계엄 차단'을 강조하며 "전면 개헌을 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다"며 "부분 개헌을 합의되는 만큼 순차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계엄 통제 조항에 대해서는 "예컨대 불법계엄을 더 이상 못하게 하자, 국회 통제를 강화하자는 걸 어느 국민이 반대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조금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불법계엄 옹호론자로 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개헌안 반대 세력을 ‘불법계엄 옹호론자’라고 부르면서, 개헌을 둘러싼 공방은 정책 논쟁에서 ‘누가 불법계엄 편이냐’를 가르는 싸움으로 방향이 달라졌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헌 반대 진영을 헌정질서 위협 세력으로 상징화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굳이 지금 개헌 카드를 꺼낸 걸 보면, 결국 반대 세력에 정치적 낙인을 찍으려는 의도가 깔린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다음 날인 7일, 국회 본회의에는 39년 만의 개헌 표결이 상정됐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하면서 의결 정족수 미달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끝났고, 이 대통령이 요청한 ‘부분 개헌’ 표결은 첫 시도부터 성립되지 못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투표 불성립을 선포한 직후 "내일 오후 2시 본회의를 다시 소집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투표 불성립 직후,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보낸 공지를 통해 "우리 당은 합의되지 않은 본회의, 제대로 된 개헌이 아닌 졸속 개헌 처리 시도에 상정되는 모든 안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으로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8일 오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송파구 조재희 송파구청장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6개 정당이 공동 발의한 개헌안이 올라갔으나 국민의힘의 비겁한 불출석으로 투표 불성립이 됐다"며 "자꾸 이러니 위헌정당 해산 심판감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의 태도에 대해서도 "내용에 크게 반대하지 않으면서 졸속이다 어떻다라고 하면 비겁한 일"이라며 "차라리 그냥 개헌안에 반대한다고 얘기해 달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송 원내대표는 "한 번 부결된 안건을 동일한 회기 내에 다시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은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이것은 명백한 위헌"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임시회가 끝나는 6월 4일까지 개헌안을 포함한 모든 안건에 무제한 토론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우원식 의장은 8일 오후 본회의에서 "어떻게든 39년 만에 개헌을 무산시키지 않기 위해 오늘 다시 본회의를 열었다"면서 "그런데 필리버스터로 응답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의사 진행이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의장은 헌법개정안 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오늘로 이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발언 도중 목이 메어 물을 마시거나 눈가를 훔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도 개헌을 막았는지, 아니면 졸속이었는지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계속될 것"이라며 "후반기 국회에서 여야가 개헌특위를 다시 구성해 헌법 전문과 권력구조 개편을 어디까지 포함할지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수순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개헌 논쟁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규정하는 설전이었다. '불법 계엄 옹호론자'라는 말이 나온 순간, 개헌 찬반 논쟁은 헌법 조문 토론이 아니라 누가 내란 편이냐는 도덕적 심판으로 변질됐다.
39년 만의 개헌은 조문 한 줄 못 바꾼 채 끝났지만, 각 진영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선명해졌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