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위기의 보건의료…"더 이상 받아줄 소아 응급실이 없다"

등록 2026.06.06 10:00:00 수정 2026.06.06 10:00:08
청년서포터즈 9기 김나혜 inahyeid@gmail.com

 

【 청년일보 】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소아 응급의료가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심야 시간대 갑작스러운 고열이나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던 아이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타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구급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이제 일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구조적 모순을 방치할 경우, 근거리에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보건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최근 수도권의 한 대형 대학병원은 야간 및 주말 소아 응급실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전문의 인력이 부족해 더 이상 24시간 교대 근무 조를 짜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시내 주요 상급종합병원조차 야간에는 소아 진료를 제한하거나, 특정 요일에만 응급실을 열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생후 11개월 된 영아가 경련 증세로 119 구급대에 구조됐으나, 인근 병원 7곳에서 "소아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끝에 2시간만에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소아 응급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전원(병원 간 이송)된 소아 환자는 처음부터 해당 병원을 직접 방문한 환자에 비해 72시간 이내 사망률이 1.9배(약 2배) 높게 나타났다. 장기적인 예후를 보여주는 30일 이내 사망률 역시 1.6배나 높았다.

 

구급차 안에서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길바닥에서 낭비하는 병원을 찾느라 허비되는 시간로 인해 소아 환자들의 치명적인 상태 악화로 직결되고 있음을 숫자가 명확히 증명한 것이다. 성인에 비해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지고 예비 능력이 부족한 소아의 신체적 특성이 고려되지 못한 보건 체계의 잔혹한 결과물이다.

 

지방의 경우 상황은 더욱 참담하다. 야간에 아이가 아프면 인접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면서, 이동 중 상태가 악화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A씨는 "과거에는 어떻게든 밤을 새우며 환자를 받았지만, 이제는 물리적인 인력 자체가 없다"며 "남아있는 의료진마저 극심한 피로 누적으로 오진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아 응급의료망은 아이들의 생명권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재앙인 '저출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더한다. 아무리 정부가 육아 휴직을 늘리고 현금성 수당을 지급하더라도 "아이가 밤에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공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안심하고 출산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소아 응급실 마비 현상이 조만간 소아 중환자실 붕괴, 나아가 청소년기 중증 질환 치료 체계 전체의 마비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 대한민국 소아 의료 체계가 보내는 경고음은 명확하다. 단순히 병원 몇 곳에 보조금을 더 쥐여주거나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거시적 대책만으로는 당장 오늘 밤 구급차 안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아이들을 구원할 수 없다.


정부는 소아 응급 및 중증 의료를 시장 논리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치안이나 국방과 같은 '필수 국가 기간망'으로 재규정해야 한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나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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