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한국 의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지역 격차, 고액의 비급여 중심 구조, 의료의 경제적 불평등, 민간 보험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총액의 가파른 증가 등이 언급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지만 모든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의료 커뮤니케이션'과 이를 둘러싼 의료의 질 문제이다.
그렇다면 의료의 질은 무엇을 통하여 판단할까. 학교 토론에서는 치료의 효과, 그리고 원하는 병원에서 원하는 때에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라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특발성 폐섬유증 등 현상 유지가 최선인 질환이나 만성질환이 생겼다면 답변이 달라진다. 더 이상 약이나 치료를 통해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해 보기 힘들 때도, 적절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더불어 비용이 합리적이고 거리가 가깝더라도, 적절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이 없다면 '원하는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라는 의료 접근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만족은 존재하기가 어렵다.
도서 '환자의 마음 : 뇌과학으로 풀어본 의사-환자 관계의 신비'를 읽은 적이 있다(청년의사, 2013). 해당 도서는 '이 모든 시스템은 환자와 치료자 간의 사회적 상호 작용만으로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의료인은 좋은 치료를 기대하게 하고, 미래에 건강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프로세스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렇듯 의료인 그리고 의료 커뮤니케이션은 환자의 경과와 기분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2형 당뇨가 발병한 것인지 아닌지 결과를 들으러 진료를 간다면, 의사의 한숨 한 번 혹은 침묵의 길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좌우되는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환자 고통의 증감 및 건강 개선 정도와 직결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질병 중심 의료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Patient centered care(환자 중심 의료, PCC), Relation centered care(관계 중심 의료, RCC), Shared decision-making(공유의사결정, SDM)의 한국 사회 도입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먼저 각각의 개념을 소개해 보겠다. 환자 중심 의료란, 환자는 환자이기에 앞서 사람이란 점을 의료진이 인지하여 환자가 능동적으로 치료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고 공감, 경청 등을 실천하는 것이다. 관계 중심 의료란, 의료 과정에서 환자-의사 혹은 의사-보호자 또는 의료진 간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치료의 질을 높이는 접근법이다.
의료진 간 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고, 환자가 의료진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며 공감, 존중,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관계 자체가 치료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공유의사결정은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의료 또는 의학적 의사결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료인과 환자들이 현대의학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정보를 활용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환자들은 가능한 검사·치료·관리 선택지들에 대한 이익과 예상 위험 정보를 모두 제공받는다.
하지만, 위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이 한국 의료 체계에서 지속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병원에 고용된 의사들이 그런 진료를 고수하면 경영진의 압박을 받고, 진료하는 환자 수가 적으니, 월급도 삭감되고 승진도 지체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3분 진료'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거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고민해 보았다. 문제는 의료의 저수가와 행위별수가제로 인하여, 의료 서비스의 양이 수익과 직결되는 구조이다. 이에 따라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진료에는 추가적 수익이 따르지 않아 병원 운영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 즉, 현재 환자 중심 의료나 관계 중심 의료를 충분히 활용하는 진료는 개별 의사의 역량이나 태도에 의존하고 있을 뿐, 제도적 환경에서는 비효율적 진료로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세에서 일부 의료진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검사나 고액의 비급여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압박을 받게 된다. 결국은 비용 문제로 인해 의료 접근성이 다시 낮아지고, 시민들은 양질의 의료 질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에 더해 환자들도 바삐 돌아가는 의료시스템에 적응되어 간단한 문진과 빠른 처방을 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의료의 질을 표준화시키기 위해서는 의사 개개인의 헌신적 태도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관련 인식에 기대기보다는, 의료 전달체계 및 지급 제도의 구조적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한국의 의료 체계인 행위별수가제는 충분한 의사-환자 상호작용이나 의사결정 과정이 제한되는 한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개선 방향은 크게 ▲지불제도 개혁 ▲상담 중심 진료 보상 강화 ▲다학제 협업 체계 확대 ▲공유의사결정(SDM) 제도화 및 법제화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다.
먼저, 지불제도 개혁의 측면에서는 미국의 Medicare와 같이 진료의 결과와 질을 반영하는 가치 기반 지급 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재입원율 감소 등 환자의 예후 개선을 통해 발생한 비용 절감분을 의료 제공자와 공유하는 구조를 가지며, 의료의 질과 효율성을 동시에 향상하는 전략으로 제시된다.
또한 영국, 독일 등 OECD 국가들은 일차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상담 시간과 의사-환자 상호작용의 질을 반영하는 정책을 강조하며, 상담 중심 진료에 대한 보상 강화를 정책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에서는 지속적 상담을 통해 환자의 충분한 이해와 높은 순응도를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므로, 고혈압 및 당뇨 이외의 만성질환에 대해서도 상담 수가 확대 및 관련 서비스에 대한 보상 강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의료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역할 분담을 강화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캐나다의 다학제 기반 일차 의료 모델은 의사·간호사·상담 인력이 협업하여 만성질환 관리와 환자 교육을 수행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환자 만족도와 의료 효율성 향상에 이바지한다. 의사가 바쁠 때는 간호 인력이, 추후에는 AI가 일부 상담과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는 구조는 의료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유방암 치료 및 유방암 환자의 임신 관련 상의, 만성 콩팥병 투석 방식 선택, 보건복지부 연구 사업 등의 공유의사결정 시범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향후 공유의사결정을 임상에서 실제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법을 통한 보상 체계와 지원이 시행될 필요가 있다.
이번 기사를 작성하며 참고한 여러 도서를 통하여, 의료의 질은 단순히 최신 치료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인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치료를 이어가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다만 이런 진료 방식이 현재 한국의 의료제도 안에서는 지속되거나 보상받기 어렵다는 한계 또한 인지하여 시스템상의 문제점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다. 향후에는 환자의 경험을 개선하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 한국 의료 역시 속도와 양 중심 구조를 넘어 의료의 과정과 관계 자체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박성철 교수님께서 이야기하시듯, 이를 위해 다양한 법안 및 제도, 수가체계 개편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거주지역, 의료기관의 수익 구조, 진료과의 특성과 무관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는 누구에게나 안정적으로 구현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환자 역시 치료 과정의 대화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와 의료진 양측의 인식 개선까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굳건한 체계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상호이해와 환자-의사 간 적절한 균형이 실현되는 질 높은 의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임승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