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지난 6월 3일 실시된 제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둘러싼 참정권 침해 논란이 뜨겁다.
이번 사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 91곳의 투표소에서 총 7,194장의 투표용지를 즉시 제공하지 못한 사건으로, 투표율 예측 실패와 지역별 투표용지 배분 부실이 그 원인이었다.
이는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에 명시된 국민의 선거권(참정권)을 침해하는 공권력의 행사로, 단순한 행정 실수라 볼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를 관리해야 할 헌법기관이 오히려 그 절차의 신뢰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참정권이 왜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떤 과정을 거쳐 획득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참정권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주권자가 국가권력을 심판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는 득표율 조작과 투표함 바꿔치기로 선거 결과 자체를 위조했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4·19 혁명을 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아예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선제 구조 안에 권력을 영구적으로 가뒀다.
그로부터 15년,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국민들은 피와 땀으로 직선제를 되찾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듯, 참정권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쟁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분노 앞에서, 우리는 매 선거마다 반복적으로 참정권을 제약받아 온 이들도 함께 떠올려야 한다. 장애인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투표소 접근성, 선거 정보의 이해 가능성, 기표 과정에서의 지원 부족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계단 앞에서, 또는 점자 선거공보 한 장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린 이들의 이야기는 매 선거마다 반복됐다. 특히 공직선거법은 시각 및 신체장애로 인해 기표행위가 어려울 때만 투표 보조 동반을 허용하고 있어, 발달장애인은 투표소에서 번번이 보조를 거부당해왔다. 법의 빈틈 앞에서 이들의 참정권은 조용히 박탈되어 왔고, 사회는 그것을 침묵으로 용인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중앙선관위가 올해 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점자 선거공보 면수 제한 폐지, 선거방송 수어통역 확대,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 지원 등의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전까지 얼마나 많은 참정권 문제가 방치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이번에는 일반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직접 피해를 겪으면서 참정권 문제가 단숨에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분노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들의 권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시 이번 사태의 원인을 살펴보면, 선관위는 유권자의 110% 수준으로 투표용지를 마련하겠다고 예산을 배정받고도 실제로는 50% 수준으로 투표 용지를 인쇄했다.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해, '잔여 투표지로 선거를 조작한다'는 부정선거론의 빌미를 없애기 위해 인쇄 기준을 보수적으로 잡았다고 해명했다. 근거 없는 음모론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오히려 실제 참정권의 침해를 초래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며 사건의 본질적 해명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이 실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쳐 주권 침해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근거 없는 주장이 민주주의 제도를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사태를 빌미 삼아 사전투표 폐지를 주장하는 일부의 논리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전투표제는 2012년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어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실시되었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전국 단위로 시행되었다. 그 취지는 주소지와 무관하게 국민이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투표 접근성을 높이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주장에 따라 사전투표제가 폐지된다면 주소지가 실제 거주지와 다른 국민들의 투표권이 실질적으로 박탈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면서 또 다른 참정권 제약을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라 생각된다.
선관위의 무능은 조직적 부정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음모가 아닌 무능에 있으며, 부정선거 음모론에 휩쓸리는 것은 오히려 선관위가 져야 할 실질적 책임을 희석시킬 뿐이다.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투표용지 수급 관리 실패, 투표구별 선거인 수 산정 오류, 현장 대응 부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분노의 방향이 음모론으로 흘러가는 순간,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은 그 혼란 뒤에 숨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를 배제한 채 개인의 과실이나 일회적 실수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현행 선관위를 둘러싼 책임성과 독립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지시와 감시는 자처하면서 실제 선거 준비와 운영은 지방공무원에게 떠넘기는 실무의 외주화, 가족 및 친인척 채용 청탁과 면접 점수 조작 등 반복적으로 드러난 각종 내부 비리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조직 문화 전반의 실패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번 사태가 다수의 분노로만 소비되지 않고,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의 책임성과 개혁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참정권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투쟁의 결과로 보장된다면, 그것은 온전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누구의 참정권에 분노하고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오랫동안 소외되어 온 이들의 목소리까지 함께 담아낼 때 비로소 이번 분노는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이나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