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26년, 첨단산업 공급망이 다시 전략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핵심광물과 배터리 소재를 잇달아 수출통제 카드로 꺼내 들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중국산 소재를 배제한 공급망을 요구하고 있다.
반도체·전기차·배터리를 핵심 산업으로 키워온 한국에게 '소재를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안보의 과제가 됐다. 일본 수출규제로 자립 논의가 시작된 지 6년, 한국의 공급망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 반도체 소재: 대일 의존도를 끌어내린 6년, 그러나
반도체 소재 분야는 지난 6년간 변화가 가장 뚜렷했던 영역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 기준 100대 핵심품목의 대일 의존도는 2019년 30.9%에서 2021년 24.9%로 약 6%포인트 낮아졌고, 소재·부품·장비 전체로도 16~17%대에서 15%대로 떨어져 2022년 상반기 15.4%로 당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에도 대일 의존도가 15~19% 수준으로 내려온 것으로 평가한다.
일본이 겨눴던 세 품목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불화수소는 솔브레인·SK머티리얼즈 등이 국내 생산을 확대하면서 대일 수입액이 2019년 3천630만달러에서 2021년 1천250만달러로 크게 줄었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국내 기업의 개발이 이어지고 벨기에 등으로 수입선이 다변화되면서 대일 의존도가 50% 아래로 낮아졌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SKC 등이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스마트폰 업계가 초박막유리(UTG)로 디스플레이 소재의 지향점을 바꾸면서 대일 수입 수요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자립 완성'으로 보기엔 이르다. 불화수소만 해도 2022년 대일 수입이 다시 늘어나는 등 일부 품목에서 '의존 유턴' 흐름이 나타났고, 노광·계측·식각 같은 고난도 장비와 일부 첨단 소재는 여전히 미국·일본·네덜란드 등 특정국 기술에 기대는 구조가 남아 있다. 의존도를 낮춘 성과는 분명하되, 최첨단 영역의 자립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배터리: 양극재는 경쟁, 음극재·광물은 의존
배터리는 단계마다 한국의 위치가 크게 갈린다. 양극재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한 축을 맡고 있다. 한·중이 경쟁하는 삼원계(NCM·NCA) 시장에서는 중국 롱바이가 선두를 지키는 가운데, 엘앤에프·에코프로·포스코퓨처엠·LG화학 등 한국 기업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니켈·코발트를 쓰지 않아 원가가 낮은 LFP(리튬인산철)를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찍어내면서,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삼원계 중심 전략까지 압박받는 형국이다.
음극재로 가면 중국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전 세계 전기차에 탑재된 음극재 적재량 기준 중국 기업 비중은 94.8%에 달했고, 한국은 2.4%, 일본은 2.7%에 그쳤다. 중국 비중은 2025년에도 분기별로 94~96%대를 유지했다. 국내에서 흑연계 음극재를 대량 양산하는 곳은 사실상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하다. 음극재 원료인 흑연의 대중 의존도는 더 높다.
국회 이재관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4년 기준 이차전지 음극재용 천연흑연의 97.6%, 인조흑연의 98.8%가 중국산이었다(통계 기준에 따라 인조흑연은 94~95%대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고려아연과 LG화학이 합작한 한국전구체(KPC)는 연산 2만톤 규모 공장을 완공하고 2025년 초 양산 체제에 들어갔다. 포스코퓨처엠은 2025년 6월 전남 광양에 연산 4만5천톤 규모 전구체 공장을 준공하고 7월 국산 전구체를 쓴 양극재를 처음 출하한 데 이어, 올해는 본격적인 양산 궤도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국산 생산'과 '공급망 자립'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 전구체 공장을 지었더라도 그 원료가 되는 니켈·코발트·리튬의 정제·가공 단계가 해외에 의존하면 완전한 자립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흑연 역시 채굴부터 가공까지 중국이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원료 채굴·정제·전구체 생산·양극재 제조·고객사 인증까지 이어지는 전 단계가 안정돼야 비로소 실질적인 공급망 자립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미·중 사이에서, 두 갈래의 압력
한국의 공급망 다변화는 두 방향의 외부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쪽은 미국이다. IRA의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에 따라 중국산 핵심광물·부품이 들어간 배터리는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다만 미국 재무부는 단기간에 중국산을 대체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흑연에 대해서는 규정 적용을 2026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가 지금 숨통을 트고 있지만, 동시에 올해 안에 대체 공급망을 갖춰야 하는 '시한부 자립'을 떠안은 셈이다.
다른 한쪽은 중국이다. 중국 상무부·해관총서는 2025년 10월 리튬이온 배터리와 양극재·인조흑연 음극재, 관련 제조 장비·기술을 이중용도 수출통제 대상에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 조치는 당초 11월 8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중국 당국이 11월 7일 시행을 2026년 11월 10일까지 1년간 일시 중단하면서 현재는 잠정 유예된 상태다. 배터리용 흑연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허가제는 이와 별개로 2023년 12월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다. 통제가 유예됐다 해도 흑연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으로서는 1년 뒤 재개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수출통제를 외교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중국은 2026년 2월 24일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문제 삼아 미쓰비시·가와사키 계열 등 일본 기업·기관 20곳을 이중용도 물자 수출통제 명단에, 또 다른 20곳을 관찰 명단에 올렸다.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발언 이후 중일 갈등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조치였다. 한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핵심광물 의존이 곧 안보 취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 정부와 기업의 대응
한국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10월 '산업안보 공급망 TF'를 가동한 데 이어, 2026년 2월 5일 해외 자원개발부터 분리·정제, 부품 생산, 재자원화까지 아우르는 '희토류 공급망 종합대책'을 내놨다.
핵심광물 관리 대상을 기존 7종에서 희토류 17종 전체로 넓히고, 한국광해광업공단의 해외 자원 직접투자 기능을 되살리며, 통상 협력 확대와 희토류 연구개발(R&D) 펀드 조성 등을 담았다. 기업들도 아프리카·호주 등으로 광물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인조흑연·실리콘 음극재 같은 대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며 중국 외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 전환기에 선 2026년, 그리고 청년 세대
지금 한국의 공급망은 분명한 전환기에 있다. 반도체 소재에서는 6년간의 투자가 대일 의존도를 끌어내리는 성과로 이어졌고, 배터리에서는 양극재의 경쟁력과 음극재·핵심광물의 의존이라는 명암이 공존한다. 미국과 중국의 상반된 압력 속에서 공급망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과제가 됐다.
이 변화는 청년 세대의 진로와도 맞닿아 있다. 공급망 재편은 소재·공정 개발, 품질·수율 관리, 해외 자원개발, 무역규제 대응 등 새로운 인력 수요로 이어진다. 산업공학·화학공학·재료공학·국제통상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첨단산업 공급망은 가까운 미래의 일터인 셈이다.
국산 전구체와 인조흑연 같은 자립 인프라가 실제 가동률로 이어질지, 정부의 자원개발 투자가 해외 광물 확보로 연결될지가 앞으로 몇 년간 한국 첨단산업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다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