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오늘날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은 약국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처방전이 접수되면 로봇이 오차 없이 약을 분류하고, 포장하며, 복약 안내문까지 출력한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약사의 단순 반복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 환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약사 직능의 정체성과 제도적 공백'이라는 날카로운 과제가 숨어 있다.
우리나라의 약국 수가 체계는 여전히 '건당 정액제'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 처방전 한 건을 처리할 때마다 지급되는 조제료에는 조제 기술과 복약지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상담의 깊이나 환자의 병력, 약물 상호작용 분석 등 고도의 임상적 판단과는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책정된다.
결과적으로 약사가 환자를 위해 10분을 할애해 심층 상담을 하든, 1분 만에 약을 건네든 경제적 보상은 동일하다. 이는 약사들에게 전문성을 위한 지적 투자를 포기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지식 전달자'가 아닌 '조제 공정의 운영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만드는 구조적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머지않아 도래할 AI 시대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술이 고도화되어 AI가 약물 상호작용 검증부터 부작용 모니터링까지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행하는 시대가 온다면, 현행 '조제료 중심'의 수가 체계 하에서 약사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AI는 약사보다 실수가 적고 비용 효율적이라는 논리가 힘을 얻는 순간, 약사는 단순히 기계를 관리하는 보조자로 전락하거나 시스템에서 완전히 소외될 위험에 처해 있다. 기술의 발전이 약사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약사를 대체해야 할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약사가 AI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보건의료 전문가로 남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제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우선 정부는 조제 행위 중심의 보상을 넘어, 다제약물 관리, 심층 약료 상담, 만성질환 모니터링 등 '약료 서비스(Pharmaceutical Care)'에 대한 정당한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
약사가 공부하고 환자의 상태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약사들은 기술에 도태되지 않고 AI를 보조적 도구로 활용하는 '임상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다.
동시에 약사 사회 스스로도 기술적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약을 전달하는 '물류'의 관점을 벗어나, 환자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질병 예방을 설계하는 '헬스케어 코디네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이는 약국을 단순한 조제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 건강 관리의 데이터 허브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능동적인 의지다.
결론적으로 AI는 이제 약업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약사의 업무 효율을 넘어, 환자의 장기적인 건강과 생존에까지 직결되는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기술적 위협으로만 인식하지 않는 태도다.
우리는 현행 수가 체계의 이면을 직시하고, 이를 물류의 관점이 아닌 '약사의 지적 전문성과 보건의료적 책임'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약사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하는 일은 다가올 AI 시대, 환자에게 더 안전한 약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민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