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발언대] 4억원짜리 약이 몇 시간 만에 사라진다…세포치료제를 지키는 '극저온 물류' 이야기

등록 2026.08.29 08:00:00 수정 2026.08.29 08:00:08
청년서포터즈 9기 한채연 gkscodus1001@naver.com

 

【 청년일보 】 백혈병 환자의 팔에서 뽑은 면역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공장으로 옮겨져 유전자가 바뀌고, 암을 공격하도록 다시 설계된 뒤, 원래 그 환자에게 돌아온다. CAR-T라 불리는 세포치료제의 여정이다.

 

문제는 이 왕복이 극도로 예민하다는 점이다. 어느 한 구간에서 온도가 잠깐만 어긋나도, 수억 원짜리 치료제는 폐기될 수 있다. 게다가 대체할 약도 없다. 그 세포는 오직 한 환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 하나뿐인 약이기 때문이다. 이 '살아있는 약'을 지키는 물류가 어떤 세계인지 들여다봤다.

 

◆ 이 약이 특별한 이유

 

보통 약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창고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하나가 잘못되면 다른 걸 쓰면 된다. 하지만 CAR-T는 다르다. 환자 본인의 세포로 만들기 때문에 '한 환자에 한 개'만 존재한다. 재고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배송 실패는 곧 그 환자가 치료 기회를 잃는 일이 된다.

 

여정도 복잡하다. 병원에서 환자의 세포를 뽑고, 이를 냉동해 제조소로 보내고, 유전자를 조작해 약으로 만든 뒤, 다시 병원으로 돌려보내 환자에게 투여한다. 세포를 뽑아 약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예스카타 같은 제품 기준으로 보통 2~4주가 걸린다.

 

◆ 영하 150 도의 여정

 

이 여정의 핵심은 온도다. 살아있는 세포는 어중간한 냉동 상태에서 오히려 손상되기 쉽다. 그래서 대부분의 CAR-T는 액체질소를 이용해 영하 150도 이하에서 보관한다. 우리가 코로나 백신에서 들었던 영하 70도보다도 훨씬 낮은, 극저온의 세계다.

 

이 온도를 배송 내내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수 용기와 전용 운송, 그리고 실시간 감시가 필요하다. 그만큼 비용도 크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런 극저온 물류가 세포치료제 전체 비용의 20~40%를 차지한다. 약값 자체가 수억 원인데, 그중 상당 부분이 '옮기고 지키는 데' 들어가는 셈이다.

 

◆ 작은 실수가 부르는 큰 대가

 

이 물류가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한 임상시험에서 위탁제조업체 직원이 청소를 마친 뒤 냉동고 전원을 다시 꽂지 않았다. 보관 중이던 치료제는 전부 못 쓰게 됐고, 다음 약을 기다리던 환자는 그사이 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냉동고 코드 하나가 한 사람의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이런 위험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세포치료제는 '살아있는' 만큼, 운송·보관 과정에서 세포가 죽거나 기준 미달이 되면 출하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초기 CAR-T 제품 중 하나는 상용화 초반 약 10%가 규격 미달이나 제조 실패로 환자에게 전달되지 못한 적이 있다(이후 공정 개선이 이뤄졌다). 세포를 살아 있게 지키는 물류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말해주는 숫자다.

 

◆ 어떻게 지키나

 

그래서 물류 회사들은 배송 상자를 점점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 대표 기업인 크라이오포트의 특수 용기는 온도뿐 아니라 압력, 충격,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경보를 보낸다. 냉동고 전원이 빠지는 것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이제는 24시간 관제센터가 배송 상태를 지켜보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 극저온 물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크라이오포트·월드쿠리어·마켄 같은 소수 전문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세포·유전자치료제 시장이 커지면서 이들이 맡는 물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조사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025년 20억달러대에서 2030년대 초반 40억~80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은 어디쯤 왔나

 

한국도 최근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2026년 4월, 큐로셀의 '림카토주'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 CAR-T 치료제로 허가받은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 들어온 CAR-T들은 대부분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 태평양을 건너 들여왔는데, 이 왕복이 투여까지의 시간을 늘렸다. 반면 국산 치료제는 국내에서 만들고 배송하므로 그 먼 구간이 사라진다. 물류가 짧아진 만큼 환자에게 더 빨리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류·생산 역량을 갖춘 기업도 있다. 지씨셀은 세포치료제 생산과 콜드체인 물류를 함께 제공하며, 전국 의료기관을 잇는 검체 물류망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국내 극저온 물류 인프라는 아직 형성 단계로,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국제 수준을 따라잡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다.

 

◆ 물류가 만드는 미래

 

세포치료제는 흔히 '기적의 항암제'로 불린다. 하지만 그 기적이 환자에게 도달하려면, 영하 150도의 긴 여정을 무사히 지켜내는 물류가 뒷받침돼야 한다. 약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그 약을 살아 있게 지키는 일이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한채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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