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SK바이오팜이 엔비디아의 최신 AI 가속기 'B200' 128장 규모의 연산 자원을 확보하며 신약개발 전반의 인공지능(AI) 전환에 속도를 낸다. 단순히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이오·헬스케어 특화 AI 모델을 개발하고, 비임상 연구와 임상시험을 연결하는 중개연구에도 AI를 접목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AI 신약개발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은 엔비디아 블랙웰(Blackwell) 아키텍처 기반 B200 128장 규모의 AI 컴퓨팅 자원을 확보했다. 연산 성능은 FP8 기준 초당 576페타플롭스(PFLOPS), 약 0.58엑사플롭스에 달한다.
연간 구독 비용은 약 17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AI 가속기 투자 가운데 최대 수준이다.
이번 투자의 특징은 GPU를 직접 구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SK바이오팜은 SK텔레콤의 B200 기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해인'을 GPUaaS(GPU as a Service) 방식으로 전용 활용한다. 해인은 1천장 이상의 엔비디아 B200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구성한 대규모 GPU 인프라다.
GPU 장비 자체를 구매하기보다 대규모 연산 자원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직접 GPU를 구축할 때 필요한 초기 투자와 데이터센터 운영 부담을 줄이면서 연구에 필요한 고성능 연산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GPUaaS의 장점이다.
SK바이오팜이 대규모 AI 인프라 확보에 나선 배경에는 그동안 쌓아온 AI 신약 연구 역량이 있다. 그동안 SK바이오팜은 연구개발 통합시스템인 'SKBP 디스커버리 포털'을 통해 연구 데이터를 축적했다.
빅데이터·AI 기반 약물설계 플랫폼과 유전체 분석 플랫폼도 자체 개발했다. 이를 통해 신규 화합물 설계와 약효·독성 예측, 약물 표적 발굴 등에 AI를 활용했다.
특히 SK바이오팜이 주목하는 분야는 'TR-AX(Translational Research-AI Transformation)'다. 비임상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실제 임상 결과로 연결하는 중개연구에 AI를 접목하는 개념이다. 전임상과 초기 임상 단계 후보물질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신약개발 과정에서는 후보물질을 발굴한 뒤에도 약효와 독성,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과 분석이 반복된다. SK바이오팜은 대규모 GPU를 활용해 '실험→분석→재학습→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빠르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에 나아가 연구자의 의사결정을 돕고 다음 실험 방향까지 제시하면 신약개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바이오·헬스케어에 특화된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도 추진한다. 범용 AI 모델을 신약 연구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질환, 타깃, 화합물 등 신약개발 데이터를 학습시켜 연구 목적에 맞는 AI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 연구에 모델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다시 학습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도 구축할 계획이다.
연구개발뿐 아니라 전사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전용 거대언어모델(LLM)도 추진한다. 연구자료 검색과 요약,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등에 AI를 활용해 내부 데이터와 업무 프로세스에 최적화된 AI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AI 인프라 투자의 또 다른 목적은 '데이터 주권' 확보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쌓이는 화합물 정보와 실험 결과, 후보물질 데이터는 기업의 핵심 연구자산이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데이터를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관리해 보안과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향후 규제와 컴플라이언스 요구에도 대응할 방침이다.
외부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과의 공동연구에도 AI 인프라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오픈이노베이션과 산·학·연 협력을 지원하는 AI 연구 플랫폼으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AI 인프라와 관련 기술을 활용한 신규 사업모델도 모색할 계획이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의 미국 판매 확대를 바탕으로 확보한 현금흐름을 차세대 파이프라인과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AI를 차세대 R&D 인프라로 본격 투자하면서 신약 판매, 현금창출, R&D 재투자에 더해 데이터·AI를 통한 연구 생산성 향상으로 성장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바이오팜의 이번 B200 확보는 AI 활용을 개별 연구과제 수준에서 대규모 모델 개발과 연구 전반의 AI 전환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며 "앞으로 AI 모델의 성능을 넘어 실제 후보물질의 질과 개발 속도, 임상 성공 가능성으로 이어지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대규모 자체 AI 인프라는 미래 신약개발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반이라는 판단 아래 선제적으로 투자를 결정했다"며 "글로벌 수준의 B200 인프라를 기반으로 신약 초기 연구개발의 핵심 역량인 TR-AX를 한층 강화하고, 신약개발 전 과정에서 AI 활용을 극대화해 연구개발의 속도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맹봉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