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09년 '형제의 난'으로 갈라선 금호가(家) 두 그룹의 운명이 16년 만에 완전히 뒤바뀌었다. 채권단 관리 아래 부채비율이 500%에 육박하던 금호석유화학은 순현금 기업으로 탈바꿈해 석유화학 불황 속에서도 분기 영업이익 3천억원대를 다시 찍었다. 반면 한때 재계 7위까지 올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까지 넘기며 대기업집단 명단에서 이름이 지워졌고, 남은 주력 금호건설은 부채비율 550%대와 씨름하고 있다.
◆ 2009년 형제의 난, 2010년 분리경영, 2015년 완전 계열분리
금호그룹은 1946년 고(故) 박인천 창업주가 광주에서 세운 광주택시(현 금호고속)에서 출발했다. 1970년 설립된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는 그룹의 '캐시카우'였고, 1988년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은 그룹을 서울로 끌어올린 상징이었다.
균열은 2000년대 중반 차입 인수합병(M&A)에서 시작됐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대우건설(6조4천억원), 2008년 대한통운(4조1천억원)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 7위까지 올랐지만, 인수대금 상당 부분을 빚으로 조달한 탓에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2010년 초 금호산업·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에,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형제가 갈라섰다. 2009년 7월 박삼구 당시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를 반대하던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했으나, 박찬구 회장은 채권단과 합의한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라 8개월 만인 2010년 3월 금호석유화학 경영에 복귀했다.
복귀 직후 명함과 홈페이지에서 금호 CI를 지우며 독자경영을 선언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11월 금호석유화학·금호피앤비화학·금호미쓰이화학·금호폴리켐 등 8개사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이 공정위 상고를 기각하면서 두 그룹은 법적으로도 남남이 됐다.
◆ 금호석화, 부채비율 498%→36.7%…'순현금 그룹' 됐다
재무제표가 보여주는 변화는 극적이다.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은 2009년 말 498%에 달했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등 계열사 지원 부담이 지분법 손실로 반영되면서 2009년 영업이익은 1천104억원에 그쳤고 연결 순손실은 6천억원대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분리경영 첫해 매출 4조9천570억원, 2011년 6조4천574억원(영업이익 8천422억원)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2012년 12월 자율협약을 조기 졸업했다. 부채비율은 2012년 189%, 2013년 160%로 떨어졌다.
이후 코로나19 시기 NB라텍스 특수를 바탕으로 2021년 매출 8조4천618억원, 영업이익 2조4천68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업황이 꺾인 2025년에도 매출 6조9천151억원, 영업이익 2천718억원, 당기순이익 2천922억원으로 흑자를 지켜내며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했다. 같은 해 LG화학·롯데케미칼 등 대형 화학사 신용등급이 하향됐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는 반등 폭이 더 가파르다. 1분기 영업이익은 594억원으로 원재료 급등 여파에 주춤했지만, 2분기에는 매출 2조2천682억원, 영업이익 3천390억원(영업이익률 14.9%)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419.7% 늘었다. 중동 리스크에 따른 공급망 불안으로 합성고무 스프레드가 확대된 데다 장갑 원료인 NB라텍스가 흑자로 돌아선 영향이다.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이익 3천984억원은 이미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재무구조는 업계 최상위권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6년 3월 말 연결 부채비율은 36.7%, 차입금의존도는 10.5%, 총차입금/EBITDA는 1.5배다. 2022~2024년 설비투자와 주주환원으로 2024년 말 순차입금이 1천646억원까지 늘었으나, 대형 투자가 일단락된 2025년 말에는 순차입금 -815억원으로 다시 순현금 상태로 돌아섰다. 올해 3월 말 회사의 현금성자산은 6천865억원에 달한다.
체질도 달라졌다. 2011년 준공한 여수 제2고무공장을 시작으로 고부가 제품 비중을 2012년 20% 수준에서 5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NB라텍스는 세계 1위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금호미쓰이화학은 2024~2025년 MDI 생산능력을 총 30만t 늘렸고, 금호폴리켐은 EPDM 연산 31만t 체제를 갖췄다.
◆ 금호아시아나, 재계 7위서 '금호'로…아시아나 팔고도 남은 짐
같은 기간 금호아시아나는 '팔아서 버티는' 16년을 보냈다. 대우건설(2010년, 산업은행 PEF)·대한통운(2011년, CJ) 재매각으로 시작해 2018년 금호타이어를 중국 더블스타에 넘겼고, 2021년에는 금호리조트를 금호석유화학에 매각했다. 2020년 12월 그룹 컨트롤타워인 전략경영실을 해체했고, 2024년 12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신주 인수(지분 63.88%)를 마무리하면서 그룹의 상징까지 떠나보냈다.
공정위는 올해 초 자산총액 급감을 이유로 금호아시아나를 대기업집단에서 연중 지정제외했다. 1987년 지정 이후 38년 만이다. 2025년 3월 공시된 금호건설 사업보고서에는 기업집단명이 '금호아시아나'가 아닌 '금호'로 기재됐다. 남은 주요 계열사는 지주회사 격인 금호고속과 그 자회사 금호건설(금호고속 지분 44.18%), 고속버스 운송을 맡은 금호익스프레스 정도다.
남은 주력 금호건설의 재무제표는 금호석유화학과 정반대다. 2020년 812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24년 미수채권·공사손실충당금을 한꺼번에 반영하는 '빅배스'로 영업손실 1천818억원, 순손실 2천285억원까지 추락했다. 2025년에는 매출 2조184억원, 영업이익 471억원, 순이익 62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고 3년 만에 배당도 재개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도 1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2% 늘었다.
문제는 자본이다. 부채비율은 2021년 165%에서 2023년 260%, 2024년 588%로 치솟았고, 흑자로 돌아선 2025년 말에도 520.2%, 올 3월 말에는 551.1%로 오히려 더 올라갔다. 원인은 본업이 아니라 금호건설이 여전히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11.12%(약 2천289만주)다.
해당 지분은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FVOCI) 금융자산으로 분류돼 주가 하락분이 손익계산서를 거치지 않고 자본에서 곧바로 빠지는 구조인데, 1분기에만 약 165억원의 평가손실이 반영됐다. 이 지분은 산업은행 차입의 담보로 잡혀 있어 당장 팔기도, 계속 들고 가기도 어렵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지주회사 격인 금호고속 사정은 더 빠듯하다. 2023년 감사보고서 기준 부채총계 1조2천289억원에 자본총계는 69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1,781%에 달했다. 광주신세계 임대보증금 5천270억원 등이 부채로 잡힌 영향을 감안해도 300%대다.
금호고속은 2024년 2월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 부지를 광주신세계에 매각해 4천681억원을 확보한 뒤 고금리 차입금 4천089억원을 갚았고, 차입부채 잔액은 2023년 말 5천845억원에서 2024년 말 2천201억원으로 줄었다. 78년간 그룹의 본진이던 광주터미널을 세입자에게 넘기고서야 빚을 절반으로 줄인 셈이다.
◆ 희비 교차의 배경…차입 M&A와 본업·재무 보수주의
두 그룹의 희비를 가른 것은 결국 부채를 대하는 태도였다. 금호아시아나는 2015년 박삼구 전 회장이 7천228억원을 들여 금호산업을 되찾는 과정에서 다시 차입을 늘렸다. 2019년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 '한정' 사태 이후 매각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자율협약 기간에도 채권단을 직접 설득해 여수 제2고무공장을 완공하는 등 본업 투자는 이어가되, 대형 M&A와 차입은 최소화하는 보수적 재무정책을 유지했다. 2021년 이후 벌어들인 현금은 자사주 매입·소각과 설비 고도화에 썼다.
'금호'로 돌아간 옛 금호아시아나는 오너 3세 박세창 금호건설 부회장 체제에서 재건을 모색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일정이 확정된 만큼 아시아나 잔여지분 처분 시점이 금호건설 재무구조 정상화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 청년일보=강필수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