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다시 그리는 '메모리의 경계'…SK하이닉스 "지금이 도약의 골든타임"

등록 2026.09.09 10:00:00 수정 2026.09.09 10:00:08
조성현 기자 j7001q0821@youthdaily.co.kr

AI 협업 확산에 일하는 방식 재설계…"사람은 판단, AI는 분석"
에이전틱 AI로 워크로드 진화…HBM 넘어 메모리 계층화 부상
'풀 스택 AI 메모리' 전략도…디바이스 넘어 시스템 공동 설계
3D·이종집적으로 메모리 경계 확장…팹·패키징·파운드리 협업

 

【 청년일보 】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메모리 반도체의 역할과 사업 영역을 다시 정의하고 나섰다. 단순히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제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워크로드에 맞는 메모리 구조를 설계하고, 가속기·소프트웨어 등 생태계와 시스템 단계에서 공동 설계하는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로의 전환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AI가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메모리에 요구되는 용량과 대역폭, 데이터 접근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계층화와 3D·이종집적 기술을 통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제조 현장과 업무 방식에도 AI를 접목해 조직 전반의 혁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일 이천캠퍼스 수펙스센터에서 열린 '2026 SK하이닉스 미래포럼'의 주요 내용을 9일 뉴스룸을 통해 공개했다. 미래포럼은 'AI 시대 Golden Time, AI Memory Solution Creator가 세상을 바꾸는 지금'을 주제로 진행됐다.

 

 

미래포럼은 AI를 비롯한 기술과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SK하이닉스가 나아갈 사업·기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행사다. 2024년 AI 기술을 선제적으로 탐색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AI 밸류체인 관점에서 혁신 가능성을 살폈으며, 올해는 AI로 인해 일과 환경이 바뀌고 사업과 기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흐름에 주목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Outside-in' 관점의 전환을 강조했다. 내부의 기존 역량과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고객과 파트너의 시선에서 시장을 바라보며 AI 생태계 변화 속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곽 사장은 과거 메모리 시장을 누가 더 빠르게 달리는지가 중요한 '직선도로'에 비유하면서, 현재는 변화의 방향과 속도가 계속 달라지는 '곡선 도로'를 달리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내부 역량뿐 아니라 외부 환경의 변화 속도를 읽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AI가 바꾸는 일의 방식…메모리 산업에도 'AI 협업' 확산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AI가 사람의 업무 방식과 조직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지가 논의됐다.

 

앤트로픽의 타리크 시히파르 제품총괄은 클로드(Claude) 실사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활용이 업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특히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어떤 업무를 AI에 맡길지 판단하고,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준다. 회로 시뮬레이션과 전력량 측정, 시스템 최적화 등 반복적이고 검증 가능한 업무를 AI가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공장(Software Factory)'을 구축하고, AI가 스스로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AI 에이전트가 향후 로봇 등 하드웨어와 결합하면 활용 범위는 제조 현장까지 확대될 수 있다. 반복 업무와 데이터 분석은 AI가 맡고, 사람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방식으로 역할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송길영 작가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업무 도구 변화에 그치지 않고 조직과 시스템 자체의 재설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사람의 업무 속도만 높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사람과 AI의 역할을 조직 차원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실제 업무와 생산 현장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주재욱 부사장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협업 대상이자 또 다른 구성원'으로 규정하고, 사람이 판단과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방향을 소개했다.

 

 

양산 현장에서는 표준업무절차(SOP)를 기반으로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다. 공정과 설비 데이터의 의미와 연관성을 정의해 AI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향후 라인 이상이 발생하면 AI가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원인과 대응 방안을 제시하면 사람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가이아(GaiA) 플랫폼을 통한 팹 생산 운영을 비롯해 안전 감독 로봇, 고소 작업용 VLM(비전-언어 모델) 드론 등 제조 현장 전반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 HBM 다음은 '메모리 계층화'…AI 워크로드 변화에 대응

 

AI의 진화는 메모리 자체에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서울대학교 윤성로 교수와 하이퍼액셀 김주영 대표, SK하이닉스 임의철 부사장이 'AI 시대가 요구하는 Memory Solution, Beyond Commodity'를 주제로 메모리의 역할 변화를 짚었다.

 

윤 교수는 AI가 현재 입력에 반응하는 '반응형 AI'에서 스스로 계획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로 진화하면서 AI 워크로드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가 여러 작업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려면 대화 맥락이나 작업 진행 상황, 중간 결과 등 이른바 'AI 상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해야 한다. 이에 따라 데이터의 수명과 접근 특성이 다양해지고 있으며, 하나의 범용 메모리만으로는 변화하는 AI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향후 AI 시스템에서는 워크로드 특성에 따라 HBM, DRAM, CXL, SSD 등 서로 다른 메모리를 계층적으로 활용하는 '메모리 계층(Memory Hierarchy)' 설계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김주영 대표 역시 멀티 에이전트와 장기 실행형 AI가 확산하면서 메모리 용량과 대역폭 등 새로운 병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모리 종류별 특성을 활용하는 동시에 다양한 AI 가속기와 시스템 차원에서 최적화해 성능뿐 아니라 총소유비용(TCO)까지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SK하이닉스가 제시한 방향이 '풀 스택 AI 메모리(Full-Stack AI Memory)'다.

 

임의철 부사장은 3D Stacked DRAM, HBM, HBF 등 다양한 메모리를 AI 워크로드 특성에 맞게 조합하고, AI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가속기 등 생태계 파트너와 시스템 레벨에서 공동 설계하는 전략을 소개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사업 범위를 메모리 디바이스 공급에서 AI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솔루션 설계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AI가 요구하는 메모리의 역할이 단순 저장 공간에서 워크로드 성능과 시스템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확장되는 만큼, 메모리 업체 역시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 3D 기술로 메모리 경계 확장…소자·패키징·파운드리 융합

 

세 번째 주제발표에서는 AI 시대의 차세대 메모리 기술로 3D 기술이 집중 조명됐다.

 

고려대학교 신창환 교수는 3D 기술을 단순히 칩을 수직으로 쌓는 방식이 아니라 메모리와 로직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로 정의했다.

 

반도체 미세화가 점차 한계에 가까워지는 가운데 시스템과 메모리 사이 데이터 이동에 따른 시간과 전력 소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이고 집적도를 높이는 3D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소재·소자·패키징·아키텍처 등 서로 다른 영역을 AI로 연계하는 3D 통합 설계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SK하이닉스는 3D 기술을 소자 자체를 수직으로 집적하는 '소자 집적'과 서로 다른 기능의 칩을 하나로 묶는 '이종 집적'으로 나눠 기술 방향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데이터 버스 대역폭을 극대화하고, 초단거리 전송(Ultra Short Reach)을 구현하는 한편 D램 주변회로(Peri)에 로직 파운드리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다만 3D 메모리 구현은 단순한 적층 기술만으로 완성하기 어렵다. 발열과 설계 복잡성은 물론 미세 인터커넥트와 본딩, 공정 통합 등 패키징 영역의 기술적 난제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3D 기술의 발전은 메모리 업계의 기술 경계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전공정인 팹과 후공정인 패키징의 경계가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메모리와 파운드리 기술의 융합도 불가피해질 수 있다.

 

김경훈 부사장은 3D 적층 D램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설계 최적화뿐 아니라 발열과 공정 난도 등 기존 메모리와 다른 기술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호영 부사장 역시 3D 기술이 팹과 패키징의 기술 경계를 바꾸고 있는 만큼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 혁신과 영역을 넘어선 공동 최적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메모리도 Outside-in"…AI 생태계와 공동 설계로 영역 확장

 

패널 토의에서는 외부 생태계의 시선에서 SK하이닉스가 나아갈 방향을 점검했다.

 

블루닷AI 강정수 연구센터장, TSMC 에이프릴 리 AI·HPC 사업개발 총괄,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 하이퍼액셀 김주영 대표, 스퀴즈비츠 김형준 대표가 참여해 AI 시대 메모리 산업의 변화와 SK하이닉스의 역할을 논의했다.

 

김형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이 진행한 토의에서는 현재의 메모리 호황이 과거와 어떻게 다른지, 다음 시장을 열기 위해 필요한 메모리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이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특히 이날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키워드는 '경계의 확장'이다. AI가 고도화될수록 메모리는 단일 제품의 성능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지고, 워크로드와 시스템 구조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SK하이닉스가 미래포럼을 통해 제시한 '풀 스택 AI 메모리 크리에이터'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HBM과 같은 고부가 메모리 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차세대 메모리, 패키징, 가속기, 소프트웨어 등으로 협업 범위를 넓혀 AI 시스템 전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미래포럼은 행사 운영 자체에도 AI를 접목했다. AI로 제작한 아젠다별 소개 영상이 상영됐으며 해외 연사와의 소통에는 실시간 AI 통역 자막 프로그램이 활용됐다. SK하이닉스 글로벌 인턴이 사회자로 참여해 한국어와 영어로 행사를 진행했고, 휴머노이드 로봇도 보조 사회자로 나섰다.

 

김형수 SKHU 총장은 폐회사에서 미래포럼의 의미를 단순한 지식 공유가 아니라 구성원의 일하는 방식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정의했다. 특히 HBM 사례를 언급하며 반도체 기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메모리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호기심과 창의력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미래포럼에서 도출된 인사이트를 구성원 학습 콘텐츠로 재가공해 사내에 공유하고 각 조직의 과제와 연결해 실행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AI가 메모리 산업의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메모리의 구조와 역할, 개발 방식, 제조 현장까지 바꾸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의 다음 경쟁력 역시 '무엇을 더 많이 만드는가'보다 'AI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얼마나 먼저 정의하는가'에 달릴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이번 미래포럼에서 강조한 '골든 타임'은 단순한 시장 호황의 시간이 아니라, 메모리 산업의 경쟁 규칙 자체가 바뀌는 시점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간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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