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금융당국은 주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관련 카드 혜택을 확대하도록 요청했다. 주유업계에서는 카드 결제 수수료 추가 인하 요구가 거론되고 있다. 표면적 명분은 민생 안정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카드사가 사실상 정책 비용을 떠안는 패턴이 반복되는 양상이 감지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중동사태 관련 금융권 간담회’를 열고 유가 상승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은행을 비롯해 보험, 카드 등 각 금융업권의 유관기관을 비롯해 금융지주 수장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특히 카드업계를 대상으로 주유비 경감 방안을 집중 주문했다. 전업 카드사 8곳을 비롯해 NH농협카드 등 9개사를 중심으로 주유 할인 및 캐시백 혜택을 확대하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으며, 이에 각 카드사들은 주유 할인 및 교통비 지원 확대 방안을 내놨다. 리터당 할인 폭을 늘리는가 하면 연회비를 전액 환급하는 프로모션까지 내건 상태다.
지금까지 카드사들은 경기 진작을 위한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춰왔다. 업의 본질이 민생과 맞닿아 있는 만큼 경제 상황을 마냥 도외시할 순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일정 부분 작용해 왔다.
문제는 이를 명목으로 한 요구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유가가 오르면 주유 할인 확대, 경기가 나빠지면 소비 진작을 위한 캐시백 확대, 자영업자가 어려워지면 수수료 인하 압박이 줄줄이 이어지는 식이다.
그때마다 카드사들은 이른바 상생 금융이라는 취지로 비용을 부담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부재한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카드업계의 체력이 이미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업 카드사 8곳의 당기순이익은 2조3천602억원으로 전년 대비 8.9%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 수익은 4천억원 넘게 줄어든 반면 조달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비용과 대손비용은 오히려 늘었다. 카드 이용액이 늘어나도 수익이 따라오지 않는 모델이 고착화된 셈이다. 외형은 커졌지만 남는 것은 줄어든 전형적인 저수익 구조다.
그런 가운데 가맹점 수수료 인하는 카드사의 수익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수수료는 이미 여러 차례 인하되며 ‘결제’라는 카드사의 본업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 인하 요구가 이어지는 것은 카드사를 사실상 가격 규제 산업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용은 늘고 수익은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카드사들이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카드사들은 정부의 요구에 따라 추가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정책적 차원의 민생 지원이 실상은 민간 기업의 수익을 잠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결코 지속 가능한 지원책이 되기 어렵다.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결국 비용을 줄이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를 보전할 수밖에 없다. 카드업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연회비 인상을 비롯해 혜택 및 부가 서비스 축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담을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정책처럼 보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그 비용이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단 것이다.
민생을 명분으로 특정 업계에 반복적으로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왜곡을 낳기 십상이다.
대내외적으로 경기를 위협하는 요인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때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기업들에 비용을 전가하는 구조가 이어진다면 그 부담은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카드사 등 민간 기업이 얼마나 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비용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청년일보=신정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