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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만학도의 스승' 故 이선재 교장 영면…법인화 벽에 선 일성여중고

개성 피란민서 국내 성인 문해교육의 상징으로…60여년간 배움의 사각지대 지켜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이 최우선"…설립자 별세 속 일성여중고는 폐교 위기 직면

 

【 청년일보 】 학업을 마치지 못한 성인 여성들의 '친정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평생교육의 산증인이었던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지난 10일 새벽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11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그를 기리는 교육계 인사들과 "교장 선생님 덕분에 까막눈을 면했다"며 눈시울을 붉힌 만학도 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인은 떠났지만, 그가 반세기 넘게 일궈온 배움의 터전은 이제 '존립'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과제 앞에 서게 됐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인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근현대 교육사의 한 페이지였다. 1936년 개성에서 태어나 1·4 후퇴 당시 서울로 피란 온 실향민이었던 고인은 10대 시절 주변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갔던 기억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1963년 야학이었던 일성고등공민학교 교사로 시작해 1972년부터 교장을 맡았으며, 이후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자중고등학교를 세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 등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2005년에는 국내 최초의 학력인정 성인 초등학교인 양원초등학교를 설립하며 성인 교육의 공교육화에 앞장선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추앙받았다.

 

상주이자 고인의 아들인 이혁준 일성여중고 행정실장은 고인을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을 가장 우선이었던 분"으로 회고했다.

 

과거 학교 운영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인은 학생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문해 과정'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행정실에서는 행정 처리비조차 나오지 않아 매년 수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반대했으나, 고인은 "학생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면 일단 시도하고 부족하면 교육청에 요구하자"며 학생의 이득을 위해 경영상 적자를 감수했다.

 

 

'교사는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그의 확고한 신념은 일성여중고가 단순한 학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 원동력이었다. 빈소에서 만난 제자들은 고인을 "친정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기억하면서도 "글을 배우며 평생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한이 풀렸다"고 입을 모았다.

 

11회 졸업생 권모 씨(63)는 "공부는 하늘이 볼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고인의 격려 덕분에 대학까지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현재 재학생인 조모 씨(73)와 이모 씨(80)는 고인의 '콩나물시루' 가르침을 가장 큰 위로로 꼽았다.

 

이들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다 빠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란다"며 "배운 것을 금방 잊어버려 좌절하는 만학도들에게 끊임없는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고 고인에 대해 회상했다.

 

하지만 고인의 영면과 함께 학교는 절박한 위기에 처했다. 평생교육법 개정(2007)에 따라 개인 설립 학교는 승계가 불가능하며, 학교를 유지하려면 설립 주체를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60년이 넘은 노후 시설을 현행 법적 기준에 맞춰 보수하려면 학급 수를 대폭 줄여야 하고, 공사 기간 학생들을 수용할 임대 공간 확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수십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증여세와 재정적 부담 역시 유족과 학교 측이 감당하기에는 무거운 짐이다.

 

이혁준 씨는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법인화를 시도하셨으나 현실적 장벽에 부딪혀 소강 상태였다"며 "현재 다니는 학생들은 무조건 졸업시키겠다는 의지지만, 장례 후 교육 당국과의 협의가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만약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일성여중고는 2028년 2월을 끝으로 폐교 수순을 밟게 된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국내 성인 여성 문해교육의 상징적 공간인 이곳이 행정적·법적 문제로 문을 닫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유족은 아들 이원준(세종대 교수)·이혁준(일성여중고 행정실장)씨, 딸 이승은 씨, 사위 김성실(전남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되어 있다. 발인은 13일 자정이며 장지는 동화경모공원이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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