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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와 청년] (上) "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공정' 외치는 2030

투표권 침해 분노…대학생·직장인 올림픽공원 집결
"보수·진보 아닌 상식의 문제"…극우 프레임은 거부

 

【 청년일보 】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올림픽공원 앞.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대학생, 점심 시간을 쪼개 나온 직장인, 자원봉사에 나선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의 지시도, 거창한 조직도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짧은 소식 한 줄이 청년들을 이 자리로 불러 모았다.

 

지난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 91개 투표소가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줄을 서다 빈손으로 돌아선 유권자가 생겼고, 부족분은 선관위의 첫 발표보다 훨씬 많은 7천여 장으로 불어났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한 표가 처음부터 가로막힌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현장에서 만난 2030 청년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취업도 주거도 이미 기울어진 세상에서, 그나마 공평하게 보장돼야 할 한 표마저 지켜지지 않았다는 분노가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다. 이들이 외친 것은 이념이 아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청년일보는 [투표용지와 청년]으로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주]

 

◆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투표용지 부족'에 분노한 청년들

 

"2030이 극우화됐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2030이 건강한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본 2030 청년들은 잇따른 부실선거에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5일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족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8일째 이어지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지난 5일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를 봉쇄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벌어진 잠실 투표소 투표함을 막겠다는 취지다.

 

아침에는 비교적 한산했던 경기장 앞이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북적거렸다. 수업을 마치고 달려왔다는 대학생부터, 근무 중 점심 시간을 쪼개 참가했다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시위 맞은편에는 음료와 간식,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역과 나이는 제각각이지만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충무로에 산다는 25세 대학생 A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왔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뉴스와 SNS를 통해 시위를 접하게 됐고 직접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이 침해당했다. 투표용지를 유권자의 50%만 준비했다는 건, 나머지 유권자를 무시했다는 것 아닌가. 분노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의정부에 거주 중인 29세 직장인 B씨는 "회사에서 일하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나왔다. 몸은 힘들지만 다른 2030들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크다"며 "국민의 권리가 침탈당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이 정도인데,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은 문제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선거 관리 체제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곳은 전국 91개 투표소다. 서울 42곳, 경기 23곳, 인천 11곳, 대구 4곳, 부산 3곳, 울산·경남·전남 각 2곳, 충북·전북 각 1곳이다.

 

처음 발표보다 훨씬 늘어난 수치다.

 

투표용지 부족분도 선관위가 처음에는 4천7백26장이라고 보고했지만, 추후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실에 새로 제출한 자료에선 7천1백94장으로 늘어났다.

 

 

◆ 목소리 내는 2030…그들이 '보수·진보' 프레임을 거부하는 이유

 

26세 대학생 C씨는 "예전부터 선거 관리의 부실함은 드러났다. 대선과 총선, 지선이 거듭될수록 이런 부실이 반복되는 건 사실상 부정에 가깝다고 본다"며 "일부 지역에선 서로 다른 투표소에서 한 후보의 득표수가 동일한 일까지 발생했다. 확률상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일부 지역만 투표지가 부족하다고 하다가, 지금은 계속해서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이 정도면 전국적으로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않은 셈이다. 재선거를 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2030 세대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공정성의 가치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자 공정해야 할 투표 과정마저 부실하게 관리되는 모습을 보며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37세 직장인 D씨는 "날이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은 더 심해지고 청년 일자리는 줄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공정하지 못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사회 구조로 청년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며 "그런데 모두에게 똑같이 행사되어야 할 투표권마저 선관위의 부실 관리로 지켜지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이번 문제를 선관위의 행정적 과실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불공정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고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2030의 분위기를 전했다.

 

정당한 의혹 제기를 2030의 극우화로 보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의견에는 거부감을 나타냈다.

 

C씨는 "2030의 전반적인 보수화는 맞는 얘기다. 하지만 2030이 극우화됐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라며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는 2030이 건강한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세 직장인 E씨는 "부정선거나 부실선거 의혹을 외치면 극우로 몰아가는 프레임이 정말 잘못됐다. 이번 시위만 하더라도 여러 언론들이 특정 프레임을 씌우고 부정적으로 선동하고 있다"며 "1명이라도 직접 현장에 와서 분위기를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청년일보=맹봉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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