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9 (일)

  • 구름많음동두천 21.8℃
  • 구름많음강릉 21.5℃
  • 흐림서울 23.5℃
  • 구름많음대전 23.7℃
  • 흐림대구 22.7℃
  • 흐림울산 23.1℃
  • 흐림광주 26.1℃
  • 흐림부산 24.2℃
  • 흐림고창 23.2℃
  • 구름많음제주 27.0℃
  • 구름많음강화 22.3℃
  • 구름많음보은 24.2℃
  • 흐림금산 24.0℃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6℃
  • 흐림거제 26.8℃
기상청 제공

[투표용지와 청년] (下) 투표용지는 어디서 사라졌나…'총체적 난국' 선관위, 분노한 청년들

수요 예측 실패부터 증거 인멸 논란까지…선관위 부실 관리의 전말
투표함 무단 폐기·개표 결과 오입력 등 지선 이후에도 '총체적 난국'

 

【 청년일보 】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올림픽공원 앞.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대학생, 점심 시간을 쪼개 나온 직장인, 자원봉사에 나선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군가의 지시도, 거창한 조직도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짧은 소식 한 줄이 청년들을 이 자리로 불러 모았다.

 

지난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국 91개 투표소가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줄을 서다 빈손으로 돌아선 유권자가 생겼고, 부족분은 선관위의 첫 발표보다 훨씬 많은 7천여 장으로 불어났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인 한 표가 처음부터 가로막힌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다." 현장에서 만난 2030 청년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취업도 주거도 이미 기울어진 세상에서, 그나마 공평하게 보장돼야 할 한 표마저 지켜지지 않았다는 분노가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다. 이들이 외친 것은 이념이 아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청년일보는 [투표용지와 청년]으로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주]

 

 

선관위의 수요 예측 실패…회의도 없이 줄인 '50% 지침'의 나비효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안일한 수요 예측과 독단적인 행정 절차에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12월, 본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 기준을 기존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하향 조정했다.

 

이 중요한 결정을 중앙선관위원들의 공식 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채, 당시 사무총장과 선거정책실장의 전결(임의 결정)로 처리했다. 특정 지역의 본투표 당일 몰림 현상이나 투표율 변동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투표 당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추가 배부가 이루어진 투표소는 전국 140곳에 달했다. 이 중 실제로 투표용지가 바닥난 곳은 91개 투표소.

 

서울 42개, 경기 23개, 인천 11개 등으로 수도권에만 80% 이상이 집중됐다.

 

가장 심각했던 곳은 서울 송파구 잠실4동 제7투표소로 무려 436장이 부족했다. 강남구 청담동 제4투표소(383매), 인천 남동구 간석1동 제4투표소(306매)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서울 강남구 도곡2동 제4투표소의 경우, 직전 대선 본투표율이 65.1%에 달했던 고(高)투표율 지역이었음에도 선관위는 기계적인 비율을 적용해 투표용지를 모자라게 보냈다. 지역별 과거 투표 성향이나 유권자 밀집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공급량을 일괄 축소하면서 격전지나 유권자 집중 지역의 투표용지는 선거 당일 오후가 되자마자 바닥을 드러냈다.

 

 

투표지 없어 발길 돌린 유권자들…1천1백4명의 투표는 누락

 

재고가 바닥난 순간, 선관위의 현장 대응 역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투표용지가 떨어진 투표소들은 즉각적인 비상 공급 체계를 가동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투표소에 배치된 공무원들이 일찌감치 투표용지 부족을 외쳤으나 선관위는 현장의 비상용 물량조차 제대로 확보해 두지 않았다.

 

투표용지 고갈로 기표 업무가 아예 멈춰 선 투표소는 전국 26곳에 달했다. 투표 중단 시간은 최소 4분에서 최대 105분(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2투표소)에 이르렀다. 긴 대기 줄을 버티지 못하고 참정권을 포기한 채 발길을 돌린 유권자들이 속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관위 행정의 부실함과 불투명성이 추가로 드러나며 불신은 증폭되고 있다.

 

법원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겪은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현장에 대한 증거보전 결정을 내렸으나, 선관위는 법원 결정문이 전달되기 불과 5시간 전 해당 투표소의 투표용지 보관상자를 이미 폐기했다고 밝혔다. 규정에 따른 절차였다고 해명했으나 사후 검증의 핵심 증거를 선관위가 선제적으로 처분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개표 결과 입력에도 문제가 있었다. 전북선관위에서는 전북교육감 선거 개표 과정에서 투표소 개표 결과가 전산에 잘못 입력된 사실이 선거 이틀 뒤인 6월 5일에야 확인됐다. 그 결과 유권자 1천1백4명의 투표가 누락됐다.

 

 

2030의 분노 "보수·진보 떠나 선관위 대대적으로 바꿔야"

 

선거는 끝났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관위를 향한 국정조사와 특검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검찰과 경찰은 27명 규모의 검·경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를 구성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8일 만인 지난 11일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강남·서초구 선관위 등 7곳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무유기 혐의로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피의자 선상에는 사퇴한 노태악 전 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을 비롯한 선관위 고위 관계자 10여 명이 적시됐다.

 

2030 청년들은 밖으로 나왔다. 대학생, 직장인들이 주축을 이뤄 지난 5일부터 8일 연속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 현장에선 모든 지역 재선거는 물론이고 사전 선거를 없애고 현장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무엇보다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시위에 참가한 23세 대학생 A씨는 "사전 선거에서 계속 문제가 불거진다. 사전 선거 제도를 전면적으로 손 보지 못할 거면 폐지해야 한다"며 "또 여러 나라들이 수개표를 하는데,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수개표를 통해 완전히 투명하게 선거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36세 직장인 B씨는 "여·야와 보수·진보를 떠나 투표지가 모자라 투표를 못했다는 건 큰 문제 아닌가. 특히 선거와 투표를 관리하는 선관위에서 부정에 가까운 부실을 드러냈다"며 "일반 공무원들만 고생했고 선관위 직원들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선관위의 문제가 확실히 드러난 지금이 전환점이다. 상식과 민주주의, 변화를 위한 이 불길이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청년일보=맹봉주 기자 】




청년발언대

더보기


기자수첩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