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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발언대] 집단 속에서 쓰러진다면,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 청년일보 】 집회, 축제, 시위. 사람이 모이는 곳엔 언제나 응급 상황이 함께한다. 그러나 우리의 응급의료체계는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엔 매주 수십만명의 인파가 모였다. 탄핵 표결이 이루어진 12월 14일 하루, 경찰 추산 순간 최대 인원 24만5천명, 서울시 생활 인구 데이터 기준으로는 42만명이 여의도 일대에 집결했다.

 

그 겨울 내내 집회는 매주 반복됐고, 한겨울 추위 속에 수 시간씩 서 있던 시민들 사이에서는 저체온, 탈진, 실신, 낙상 환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 구급대원은 과연 제때 도달할 수 있었을까.

 

응급구조학과 학생으로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좁은 골목 하나에 약 10만명이 밀려들었고 그날 밤 159명이 목숨을 잃었고 195명이 부상을 입었다.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인파 때문에 100미터 거리조차 진입하지 못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에 압사 위험 신고 11건이 접수됐지만 이 중 4건에만 출동했고, 첫 경비 기동대가 현장에 도착한 건 첫 신고로부터 5시간이 지난 뒤였다.

 

군중 안전 전문가인 영국 서퍽대 키스 스틸 교수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군중 탓이 아닌 관리와 대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태원은 피할 수 없었던 비극이 아니었다. 대규모 인파 앞에서 우리 응급의료체계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 구조적 문제였다.

 

대규모 군중 속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은 압사나 심정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제 학술 연구에 따르면 대규모 행사에서 발생하는 응급 환자의 유형은 훨씬 다양하다. 장시간 야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저혈당, 탈수,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실신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고온 환경에서는 열사병이 빠르게 진행되어 적절한 처치 없이는 위험할 수 있다.

 

군중 속에서 밀리거나 넘어지면서 발생하는 골절, 타박상, 두부 외상도 주요 응급 유형이다. 지병을 가진 고령 참가자의 급성 발작이나 호흡곤란도 발생하며, 여름철 대형 페스티벌에서는 음주·약물 관련 응급 사례 역시 적지 않다. 한 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이라는 환경 자체가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응급 위험에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태원 이후 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 2021년 신설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4조의3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려는 자에게 응급의료 인력 및 응급 이송 수단 확보를 의무화했다. 처음으로 법이 이 문제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무 배치 기준이 행사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고, 특히 집회나 시위처럼 사전 계획이 없는 자발적 인파 밀집 상황에는 이 법 자체가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주최자가 없었고, 법이 개입할 근거도 없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정부는 2023년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중증·응급환자 이송 체계 확충, 지역별 이송 지침 마련, 구급대 역량 강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중증 환자를,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중등증 환자를 담당하도록 기능을 나눠 이송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이 계획이 군중 밀집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구급차가 현장에 아예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이송 효율을 아무리 높여도 출발점 자체가 막혀 있다. 평시 응급 체계와 대규모 인파 상황의 응급 체계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있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2025년 전국 성인 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급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 신뢰율은 54.2%에 그쳤다. 2024년 의정 갈등 여파로 11.5%포인트 하락한 이후 아직 회복되지 않은 수치다.

 

2명 중 1명은 정작 응급 상황이 닥쳤을 때 시스템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라면 이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이미 군중 밀집 환경에 특화된 응급의료 분야인 매스 개더링 메디슨(Mass Gathering Medicine)을 별도의 전문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 분야는 병원 전 응급의료와 재난의학, 공중보건이 교차하는 영역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응급의학과 등에서 정규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WHO도 대규모 집합 행사에 대한 응급의료 가이드라인을 운영하며 각국에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

 

이 체계의 핵심은 세 가지다. 날씨, 군중 밀도, 음주 여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어떤 유형의 응급 환자가 얼마나 발생할지 사전에 예측하고, 현장 응급의료 포스트를 군중 내부 곳곳에 분산 배치해 구급차 없이도 초기 처치가 가능하게 하며, 구급차 진입이 어려운 상황을 예외가 아닌 기본 조건으로 전제하고 도보 이송 프로토콜을 사전에 수립하는 것이다. 뉴욕주의 경우 5천명 이상 행사에는 15분 내 도달 가능한 의사 확보를, 3만명 이상 행사에는 현장 상주 의사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응급구조학과 학생으로서 공부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응급의료는 개인의 역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 훈련된 구급대원이 있어도, 인파 100미터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역량은 발휘될 수 없다. 사람이 모이는 현장을 처음부터 응급의료체계의 시각으로 설계하는 것, 자발적 집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 밀집 응급 대응 기준을 마련하는 것, 심정지뿐 아니라 실신·외상·열사병·호흡곤란까지 포괄하는 현장 대응 체계를 갖추는 것. 이것이 이태원 이후 우리 사회가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심장이든, 발목이든, 체온이든, 우리 시스템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원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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