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에서 촉발된 성과급 문제가 완성차를 넘어 IT(정보기술) 등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익 연동형 성과급을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산업 전반이 연쇄적인 파업 압박과 생산 차질 위기에 직면했다.
학계 일각에선 '영업이익 N% 성과급'이 자칫 주주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노사 협상만으로 성과급을 임의로 결정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이익 분배 방식이 주주의 몫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성과급 지급에 대한 최소한 이사회 검토와 주주총회 결의를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13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부분 파업을 진행한다. 구체적으로 오전조 기술직(생산직) 직원들은 평소보다 2시간 이른 오후 1시 30분에 작업을 중단하며, 오후조 역시 퇴근 시간을 2시간 앞당겨 오후 10시 10분에 퇴근한다.
그동안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15차례나 교섭 테이블에 앉았으나 임금 인상폭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다. 특히 갈등의 중심에는 성과급을 둘러싼 이견이 자리 잡고 있다.
노조 측은 기본급 14만9천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과 함께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반면, 사측은 기본급 8만9천원 인상과 성과금 350%+1천만원 등을 골자로 하는 제시안을 내놓고 있다.
노조의 부분 파업에 따라 현대차의 생산 차질도 불가피해지게 됐다. 완성차 업계 안팎에선 현대차 노조의 이번 파업으로 시간당 187억원 이상의 생산 차질액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성과급 갈등은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IT 업계의 대표 주자인 카카오까지 번지고 있다. 카카오 노사 역시 최근 성과 보상 체계의 투명성과 지급 규모를 두고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앞서 카카오 노사는 올해 임금교섭 과정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 보상체계 개선 문제 등을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카카오 본사를 비롯해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5개 법인은 지난달 10일 4시간 부분 파업을 벌인 바 있다. 같은 달 29일에는 하루 동안 연차를 쓰는 방식의 '로그아웃데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노사 갈등 장기화 조짐 속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는 오는 21일 정오부터 1시간 동안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아지트 내부에서 피켓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행동은 조합원들의 자율적인 참여 방식이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억대 성과급이 노동계의 강경 투쟁 기조를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고 지적한다. 즉, 반도체 대기업들의 성과 보상 사례가 타 산업군 노조에 일종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면서 경영 현실과 괴리된 무리한 요구와 파업을 정당화하는 부정적 학습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대기업 사례가 현대차 노조 등에 '끝까지 대치해야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줬다"면서 "노조가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압박 수위를 높임에 따라, 향후 부분 파업이 전면 파업으로 확산하며 교섭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 전기차의 굴기와 도요타 등 경쟁사들의 하이브리드 공세로 대외적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외부적 어려움 속에서도 내수 시장은 노조 파업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있고, 친노조 성향의 정책 기조까지 겹치면서 현대차의 경영 불확실성이 악화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의 성과급 갈등을 계기로 정부가 기업의 경영성과급 규모 결정 과정에 주주총회 결의를 의무화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부 등 관계 당국은 기업이 성과급 규모를 결정할 때 이사회의 사전 검토나 주주총회 결의 등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성과급 갈등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N%)을 사전에 선점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기업 경영에서는 영업이익이 나더라도 순이익은 적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존재할 수 있다"면서 "영업이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급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결국 주주들의 몫을 가로채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부연했다.
조 명예교수는 "성과급은 형식 논리상 엄연히 주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이익 처분에 관한 사항은 주식회사 최고의 의사결정 기구인 주주총회에서 다루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오정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는 "이사회 검토나 결정 없이 노사 협상만으로 성과급을 분배하는 방식은 주주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