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정부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 교섭 범위를 확대하자 국내 주요 기업들이 노동 당국의 처분에 불복해 재심 신청을 고려하거나 소송에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되며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화오션은 사내 급식, 출퇴근 버스 운행, 시설 관리 등을 담당하는 도급업체 '웰리브' 소속 노동자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판정 불복으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 및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청 노조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한화오션이 교섭 대상 노조 공고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만 명시하고 웰리브지회를 제외하자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에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4월 16일 웰리브지회를 포함해 교섭 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내라고 결정했으나, 한화오션은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중노위 역시 초심 결정을 유지하며 원청 사용자성을 재차 인정했다.
한화오션 측은 "중노위 재심 판정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원청의 계약 외 사용자성 인정 의제와 관련해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사법 절차를 통해 최종 판단을 받고자 하며, 집행정지도 함께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원청과 하청 간 사용자성 인정 범위에 대해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기 위한 것이지, 중노위 결정을 거부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단체교섭을 지연시키려는 목적도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완성차업계 역시 유사한 부문에서 사용자성 인정을 받았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현대자동차가 구내식당 근무자, 보안요원 등 사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울산지노위는 전국금속노조가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 요구 사실공고 시정 신청'을 인용한 결정문을 양측에 송달했다.
울산지노위는 하청 노동자 업무가 현대차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는지, 해당 노동자 업무가 원청의 필수적 사업 체계를 담당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사용자성 인정 대상을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울산·전주·아산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소속이긴 하지만 원청인 현대차가 소유하고 있는 작업 공간, 주요 설비, 컨베이어벨트 등에서 일하며 원청 승인 없이는 근무 환경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외주 업체 소속인 구내식당 근무자와 공장 보안·경비 요원들 역시 현대차 소유 시설에서 근무하며 원청의 위생 기준, 보안 시스템 등을 따라야 하므로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결정서를 검토한 뒤 중노위에 재심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노란봉투법 시행과 함께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노무관리 및 법적 리스크 증대에 경영 효율성이 저하될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원청이 단체교섭 책임을 전적으로 지게 될 경우, 직접 근로 계약 관계가 없는 인건비 인상분과 인사 리스크를 원청이 모두 떠안게 돼 국내 외주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현대차나 한화오션처럼 사내 협력업체 비중이 높은 기업은 인건비와 관리비용이 증가하고,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등 경영 효율성이 일부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현재와 같이 사용자성 인정 여부를 둘러싼 분쟁이 노동위나 법원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면 '노사관계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적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라면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기업도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협력업체 근로자도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청과 직접적인 고용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았는데 '사용자성'이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붙여 책임을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청의 사용자성 확대가 단순히 개별 기업의 노무 리스크를 넘어, 지난 수십 년간 형성돼 온 국내 산업 생태계의 분업 구조를 무너뜨리는 격"이라고 밝혔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