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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발언대] HPV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탈모가 '생존의 문제'입니까

 

【 청년일보 】 "가다실 9가 맞았어?", "아니, 너무 비싸서 못 맞았어. 그거 다 맞으면 60만원 든다더라."

 

20대 친구들과 종종 나누는 대화다. 무료 접종 나이는 이미 지났고,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관련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전액 내 돈으로 맞아야 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대화가 먼저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옛날에는 이걸(탈모를) 미용 문제라고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무한대 보장이 재정적 부담이 크다면 횟수나 총액 제한을 하는 등 검토는 해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배경으로는 젊은 세대의 소외감을 들었다. 보험료는 젊을 때 내고 혜택은 나이 들어 받는 구조인데, 정작 지금 절실한 청년들은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해한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소외감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외감의 실체를 짚는 방향이 틀렸다. 20대인 나와 내 친구들이 실제로 억울함을 느끼는 지점은 탈모약이 아니라, 자궁경부암을 비롯한 여러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있는데도 그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험료는 매달 성실히 내면서도, 정작 병을 막을 수 있는 순간에는 60만원이라는 벽 앞에서 접종을 포기한다. 대통령이 청년의 소외감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그 시선이 먼저 향해야 할 곳은 여기다.

 

◆ 탈모는 생존이 아니라 '미용'의 문제다

 

현재 건강보험은 원형탈모처럼 의학적 원인이 분명한 탈모에는 이미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이번에 논의되는 것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남성형·여성형(안드로겐성) 탈모를 급여 대상에 포함할지 여부다.

 

이는 유전적 소인과 남성 호르몬(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별도의 기전이지만, 그 기전이 무엇이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탈모는 치료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반면 암은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

 

◆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암, 지원은 아직 소수만

 

국가암등록통계(2023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매년 약 800명 안팎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자궁경부암은 HPV 백신과 검진을 통해 예방 가능성이 높은 대표적인 암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통계(2026년 1월 발표)로는 2023년 한 해 3천144명의 여성이 새로 진단받았다. HPV는 남성에게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또, 이세영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국내 두경부암(구인두암·구강암·후두암 등 포괄) 발생이 2019년 5천613건으로, 이 중 4천306건이 남성이었다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두경부암 전체가 HPV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 교수는 구인두암의 경우 원인의 약 30%가 HPV 감염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정부가 국가예방접종(NIP) 지원 대상에 12세 남성 청소년을 추가하면서, 어느 정도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다만 지원 연령은 여전히 12~17세 여성 청소년, 18~26세 저소득층 여성, 12세 남성 청소년으로 좁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백신은 전액 비급여다. 가다실 9가 기준으로 1회 접종에 평균 18만~22만원, 3회 완료 시 55만~65만원이 든다(민간 비급여 진료비 비교 플랫폼 기준, 병원별 편차 있음).

 

실제로 주변 친구들과 이야기 해보면 절반 가까이는 '가격이 비싸서' 못 맞았다고 답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20~39세 미혼·기혼 무자녀 남녀 1,04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접종하지 않은 이유로 '비용 부담'(54.2%)이 가장 많이 꼽혔고, 94.7%는 남성 무료 접종 확대에 동의했다. 비용 장벽 하나만 낮춰도 접종률이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건보료를 내는 20대 대부분은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고, 성경험이 있는 경우도 많다. 성경험이 있으면 백신이 소용없다는 오해도 있지만,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성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접종을 권장한다.

 

가다실 9가가 예방하는 9가지 HPV 유형에 이미 모두 노출됐을 가능성은 낮아, 나머지 유형에 대한 예방 효과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이런 근거로 여성의 가다실9 접종 가능 연령을 만 45세까지 확대했다.

 

◆ 예산의 우선순위를 다시 물어야 한다

 

탈모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하는 선택 앞에서 60만원이라는 벽에 부딪히는 것, 굳이 소외감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면 그게 진짜 실체에 가깝다. 한정된 재정을 어디에 먼저 쓸지는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이고, 그 기준은 '생존'이어야 한다.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암인 HPV 관련 암의 지원 연령을 넓히는 일이 탈모 치료제 급여화보다 앞서야 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발언대로 '젊은 세대의 소외감'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정작 그 세대가 비용 때문에 예방접종조차 미루고 있는 현실부터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 청년서포터즈 9기 김아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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