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인공지능(AI) 혁신의 속도가 산업 지형을 재편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 안팎에선 적잖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수조 원대 설비투자와 초격차 개발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른 한편, 거둔 성과를 사회안전망 확충과 노동자 처우 개선에 우선 배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은 최근 고용노동부가 'AI 기술혁신에 발맞춘 새로운 사회 혁신의 길'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노사 간의 입장 차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비롯됐다. 노동계는 AI 혁신의 성과가 특정 기업에만 집중돼서는 안 된다며 초과이윤을 사회안전망 확충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자본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며 미래 투자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맞섰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막고 사회안전망을 넓히자는 노동계의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거대한 기술 전환기에 초과이윤 배분이라는 접근법을 내세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금의 글로벌 시장은 성과의 사회적 환원보다, 격화되는 기술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재원 확보가 우선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90% 급증한 1조5천112억 달러(약 2천279조원), 메모리 시장은 250% 뛴 8천39억 달러(약 1천2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폭증하는 AI 관련 반도체 수요와 기술 고도화 속도를 감안하면, 시장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AI 시장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간판 기업들의 행보 역시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은 오는 2035년까지의 투자 계획을 2천500억 달러(약 376조원) 규모로 확대했고,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창신메모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295억 위안(약 6조5천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조달 자금은 생산라인 기술 업그레이드(75억 위안), D램 기술 고도화(130억 위안), 차세대 D램 선행기술 연구개발(90억 위안) 등에 투입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주요국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와 대규모 자금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AI 시대를 맞은 기업의 이익은 당장 나눠 가질 결실이 아니라 기술 주도권 확보를 위한 재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기업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것은 격화되는 기술 전쟁에서 스스로 도태되고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이런 시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익 배분을 둘러싼 노사 간 대립을 중재하고 현실적인 접점을 찾는 것이다. 노동계가 제기하는 사회안전망 확충과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살피는 한편,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기업의 투자 동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정책적 지원과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때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