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홈플러스가 긴급운영자금(DIP)을 확보한 뒤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Trader Joe's)'를 본뜬 매장 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자금 부족과 PB 경쟁력, 상품 공급망 등 핵심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 만큼 계획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1일 홈플러스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연장했다. 이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2천억원에 이르는 DIP다.
홈플러스는 이어 22일 입장을 통해 트레이더 조와 유사한 형태로 매장을 개편해 영업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 측은 "67개 핵심 매장 중심 영업은 소요 자금을 최소화하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통적인 대형마트 영업 방식에서 탈피해 영업 방식을 일부 조정할 계획"이라며 "먼저 복층 매장을 약 1천평 정도로 단층화해 영업 면적을 최적화함으로써 매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식품과 PB, 그리고 고회전 생필품 위주로 판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사업 모델은 트레이더 조와 유사한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가격·고품질 PB 비결"…트레이더 조, 연 11%대 성장세 지속
트레이더 조는 미국의 대형마트 브랜드로 대부분 자체 브랜드(이하 PB) 상품만을 취급·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 트레이더 조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약 80%는 PB 상품으로 구성돼 있다.
취급 품목도 대부분 식료품에 집중돼 있다. 일반 대형마트처럼 수만 종의 상품을 진열하기보다 소비자 수요가 높은 식품과 생필품 위주로 상품을 구성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트레이더 조는 미국 유통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간 매출은 약 24조~29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연평균 성장률은 약 11%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매장 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약 6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20개 안팎의 신규 점포를 출점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던넘비(dunnhumby)가 발표하는 식료품 유통업체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매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높은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 유통시장에서 트레이더 조가 성장세를 이어가는 배경으로 ▲합리적인 가격 ▲차별화된 PB 상품 ▲효율적인 상품 운영 등을 꼽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는 제조사와 직접 거래하는 구조를 통해 중간 유통 비용을 줄이고 있다"며 "절감한 비용을 가격 경쟁력 확보에 활용하면서도 품질 관리에도 집중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품 운영 방식도 일반 대형마트와 차별화된다. 트레이더 조는 매장당 평균 4천여 개의 상품만 판매한다. 이는 경쟁사들이 평균 4만개 안팎의 상품을 취급하는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취급 상품 수를 줄이는 대신 판매량이 높은 상품에 집중하면서 재고 관리와 물류 효율을 높이고, 상품 회전율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평가다. 여기에 만다린 오렌지 치킨(Mandarin Orange Chicken), 쿠키 버터(Cookie Butter) 등 트레이더 조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대표 PB 상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매장으로 유인하고 있다.
◆"선택 아닌 막다른 길"…한국판 '트레이더 조' 실현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홈플러스의 이와 같은 전략이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놓여 있는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일반적인 대형마트의 업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홈플러스의 계획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여유 자금 부족 ▲제한된 PB 상품 ▲상품 공급망 확보 난항 등의 이유를 거론하고 있다.
먼저 홈플러스의 녹록지 않은 자금 상황이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홈플러스는 이번 긴급운영자금(DIP) 대출 승인으로 약 2천억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미지급 대금, 공익채권 규모만 약 1조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금액에는 약 7천억원에 이르는 미지급 납품대금을 비롯해 용역 및 서비스 대금,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 등이 포함돼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천억원을 전부 매장 개편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67개 매장을 전부 리뉴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또한 상환 시기가 도래하는 각종 부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PB 상품이 트레이더 조의 상품 대비 매력 요인이 부족하다는 점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홈플러스는 현재 약 2천~3천개의 PB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트레이더 조의 상품도 이와 유사한 2천500개~3천500개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기업회생 절차를 거치며 홈플러스 PB 상품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보고 있다. 기존 브랜드(이하 NB) 상품 납품 차질로 빈 매대를 PB 상품으로 채우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PB가 차별화 상품이 아닌 대체 상품으로 인식돼 브랜드 가치가 훼손됐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더 조의 PB 상품과 양적 수준은 비슷할지 몰라도, 저하된 브랜드 이미지를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또한 홈플러스 PB 상품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킬러 상품'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정적인 PB 상품 공급망 확보 역시 '한국판 트레이더 조' 전략의 실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레이더 조는 자체 제조·물류망을 기반으로 전국 600여 개 매장에 PB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상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 과정에서 NB 상품 납품이 중단되자 일부 PB 상품으로 매대를 채웠지만, 특정 카테고리 상품에 편중되면서 상품 구색이 크게 축소된 모습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납품대금 지급 구조가 지속될 경우 PB 상품의 생산과 공급에도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PB는 제조사와의 장기적인 협력 관계와 안정적인 대금 지급이 뒷받침돼야 품질과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현재와 같은 자금 여건에서는 상품 개발은 물론 기존 PB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면서도, 현재 계획한 67개 매장보다 규모를 줄여 핵심 점포 위주로 개편할 경우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의 한 연구원은 "트레이더 조 모델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리는 것보다 핵심 상권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홈플러스도 현재 계획한 67개 매장을 동시에 개편하기보다는 수익성과 상권 경쟁력이 검증된 일부 핵심 점포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PB 경쟁력과 상품 공급망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점포 개편을 확대하면 투자 대비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소수 점포에서 고객 반응과 운영 모델을 검증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