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재산분할 소송이 다시 대법원 심판대에 오른다.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 9천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상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써 2017년 시작된 두 사람의 법정 공방은 10년 가까이 이어지게 됐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전날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이상주 부장판사)에 재상고장을 접수했다. 가사1부는 이번 소송의 파기환송심을 맡았던 재판부다. 최 회장의 대리인단은 입장문을 내고 "최 회장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고심 끝에 상고장을 제출했다"라며 "주주들과 그룹경영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자세로 향후 절차에 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달 24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고 재산분할금을 9천440억원으로 산정했다. 분할 비율은 노 관장 3분의 1, 최 회장 3분의 2로 정해졌다. 외부에 알려진 국내 재벌가 이혼소송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금이다.
대법원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하급심의 법리 오해나 심리 미진 여부를 살피는 법률심이다. 이에 최 회장 측은 재상고심에서 재산분할 비율과 규모 산정 과정에 법리적 잘못이 있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주요 쟁점은 분할 비율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상고심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 불법 자금인 만큼 SK에 흘러들어 갔더라도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고 판단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파기환송심에서 노 관장 몫이 항소심 35%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파기환송심이 인정한 노 관장의 몫은 33.3%로 항소심 35%와 비교해 차이가 1.7%포인트였다. 비자금 기여가 배제됐는데도 비율 조정이 미미했다는 점이 최 회장 측 불복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혼소송 사실심 변론이 끝난 뒤의 SK 주가 상승분을 분할 비율에 반영한 대목도 쟁점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주식 가액 산정 기준 시점을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로 정하면서, 파기환송심 변론 종결일인 올해 6월 26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배척했다. 다만 두 시점 사이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사정은 분할 비율 산정에 참작했다.
SK실트론 지분이 분할 대상에 포함된 점도 최 회장 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이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LG그룹에서 SK실트론(당시 LG실트론) 지분 29.4%를 사들인 시점은 2017년으로,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른 뒤였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 지분 가치를 7천500억원으로 매기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최 회장 측에서 나온다.
아울러 재상고 없이 판결이 확정됐다면 최 회장은 15일 0시부터 지급을 마칠 때까지 연 5%의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이는 연간 약 472억원, 하루 1억3천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재상고로 판결 확정이 미뤄지면서 이자 부담 시점도 늦춰지게 됐다.
1조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이다. 최 회장이 SK 주식을 매각하기 위해서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에 따라 최소 거래일 30일 전에 매각 계획을 알려야 하는 등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재계 일각에서는 재원 마련 과정에서 그룹 지주회사인 SK 지분 매각까지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그룹 경영권은 물론 주식시장에도 부정적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최 회장 측은 분할금 일부를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노 관장 측에 제안했지만, 노 관장 측이 전액 현금 지급 원칙을 고수하며 합의는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장남인 최 회장과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1988년 결혼해 세 자녀를 뒀다. '세기의 결혼'으로 불렸던 두 사람의 파경은 2015년 최 회장이 한 일간지에 보낸 편지를 통해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최 회장은 2017년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무산되자 2018년 2월 정식 소송을 냈고, 노 관장도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12월 1심은 최 회장의 SK 주식을 분할 대상이 아닌 특유재산으로 보고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만 인정했다.
반면 2024년 5월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노 관장의 기여를 받아들여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 1조3천808억원으로 액수를 대폭 늘렸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비자금 부분을 문제 삼아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위자료 20억원은 그대로 확정됐고, 파기환송심에서는 재산분할만 다시 다뤄졌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최태원 회장으로서는 법률적 판단을 다시 받는 것을 비롯해 재원 마련 시간도 확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라면서도 "소송 리스크 장기화와 경영 불확실성 지속 등 부담은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 청년일보=강필수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