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청년 고용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들이 취업 후에도 역량을 키워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인공지능(AI) 확산에 대응해 산업·노동·교육 분야의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24일 서울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청년들이 바라는 청년고용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고 청년 고용 문제의 구조적 원인과 정책 대안을 논의했다.
이번 세미나는 청년 고용률 하락과 '쉬었음' 청년 증가, 첫 일자리 진입 지연 등 청년층의 고용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내 일이 있는 청년 시리즈'의 첫 사업으로 마련됐다.
청년(15~29세) 고용률은 2024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27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올해 1~7월 20~30대 '쉬었음' 인구는 월평균 68만명에 달했으며, 올해 5월 기준 대학 졸업 후 미취업 기간이 1년 이상인 청년 비중도 48.6%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협은 향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뿐 아니라 취업 이후에도 노동시장 양극화로 성장에 제약을 받는 청년, 고립·은둔 청년 등의 문제를 다루며 정책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 청년 일자리, '성장 가능성' 중심으로 전환해야
김창범 한경협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와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기업이 과감히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혁파하는 한편, 청년들이 역량을 키우면 그에 맞춰 일자리도 나아질 수 있도록 성장할 기회와 공정한 대우가 가능한 노동시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공서열에 기반한 경직적인 임금체계와 획일적인 근로시간, 산업 현장의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교육 시스템이 AI 시대의 산업 구조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신산업 확산을 가로막는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한 고용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장은 청년들이 실제 취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정책에 반영하고 노동시장 변화에 맞지 않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투자와 성장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만큼 기업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재준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청년 일자리의 양적 확대를 넘어 첫 일자리에서 경력을 쌓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과 AI 전환 등 노동시장 변화가 청년 고용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펴 공정한 진입 기회와 성장의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중소기업 취업 기피, 성장 기회 부족 때문"
첫 번째 발제에서는 청년 고용정책의 목표를 '취업자 수'에서 '성장 경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신창훈 경희대 총학생회장은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 하나가 아니라 취업 후 역량을 키우고 더 나은 기회로 이동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층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단순히 눈높이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성장 기회의 부족과 중견·대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력 경로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직무와 성과 중심의 경력 기록을 구축하고, 근무 기업의 규모보다 실제 역량을 평가하는 채용·평가 방식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직 중에도 역량을 키우고 다른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신 총학생회장은 청년 고용정책의 평가 기준 역시 단순 취업 인원에서 벗어나 취업을 통해 어떤 역량을 쌓았고 더 나은 기회로 이동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청년 고용 부진, 개인 아닌 노동시장 구조 문제"
두 번째 발제에서는 청년 고용 문제를 개인의 의지나 노력 부족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변재현 미래생각 일자리센터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질의 격차와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가 청년 고용 문제의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체의 월 임금은 573만8천원으로 300인 미만 사업체의 366만7천원보다 크게 높았다. 반면 월 근로시간은 각각 170.3시간과 162.4시간으로 임금에 비해 격차가 크지 않았다.
변 센터장은 이 같은 일자리의 질적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청년들이 대기업 취업만 고집한다고 보는 것은 청년 고용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청년층의 짧은 근속과 퇴사를 '끈기 부족'으로만 해석하기보다 연공서열 중심의 보상체계와 노동시장 경직성이 청년의 기회와 이동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과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확대하는 동시에 청년들이 노동시장 제도 개편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로 포함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 AI 시대 청년 일자리, 규제·노동·교육 개혁 필요
AI 확산에 따른 고용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 수요를 창출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술적으로 2030년에는 90% 이상의 일자리에서 업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AI 활용이 본격화될 경우 고용 악화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존 일자리를 보호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신산업 진입규제 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대학교육·훈련의 유연성 및 실용성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다만 AI 시대에도 창의성, 사회성, 육체적 민첩성 등 인간이 비교우위를 갖는 영역은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청년들이 변화하는 산업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청년 고용 문제를 산업과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좌장을 맡은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 일자리 부족이 여러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노동시장과 산업 구조 등 다양한 측면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임규빈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AI 시대 산업·고용 환경 변화에 맞춰 청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노동·산업정책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고용정책을 단기 대책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현장 수요를 반영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이 이뤄지는 정책 집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핵심 과제는 청년을 단순한 고용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노동시장의 주체로 바라보는 데 있다. 취업률을 높이는 단기 처방과 함께 청년이 첫 일자리에서 경험과 역량을 축적하고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청년 고용정책의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