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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상조업계 옥죄기...'서민 보호'의 역설이 되지 않기를

 

【 청년일보 】 서민의 쌈짓돈을 지키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미래의 서민에게 더 큰 비용 부담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상조업계의 표정이 복잡한 이유다.

 

대주주 신용공여 제한과 금융당국과의 합동조사권 신설 등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업계가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 과거 영세하고 불투명했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10조원 규모 시장에 걸맞은 투명성과 건전성을 갖추라는 요구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객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상조업계라면 감내해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규제의 방향이다.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이는 규제에는 업계도 동참할 수 있지만, 모든 해법이 '통제와 감시'에만 집중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기업이 장기간 약속한 서비스를 이행할 수 있도록 정상적인 자산 운용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정책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업계가 특히 긴장하는 다음 이정표는 '선수금 운용 규제'다. 단순한 업계의 막연한 우려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이미 상조 선수금의 보호 필요성과 제도적 관리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종 금융상품의 고객자금 보호방안' 연구를 통해 상조 선수금의 취약성을 지적하고 금융당국 수준의 관리·감독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이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의원실 주최 포럼에서는 예금보험공사가 상조 선수금을 보호하는 '예보 연계형 하이브리드 보호 모델'까지 논의됐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막고 서민 금융의 안전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는 움직임이다.

 

소비자 보호의 취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상조업의 사업 구조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상조는 단순히 돈을 맡아두는 금융상품이 아니다. 가입자가 수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선수금을 납입하면 상조사업자는 미래에 장례 등 약정된 현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현재의 자산 운용 성과와 미래의 서비스 원가 사이의 균형이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특히 인건비와 장례 관련 원자재·서비스 비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자산 운용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제한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금이나 국공채 등 안전자산 중심으로 운용하면 원금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운용수익률이 향후 서비스 원가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명목상 자산을 보존하더라도 실질적인 서비스 제공 여력은 점차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서민의 돈을 지키겠다는 선의의 규제가 역설적으로 상조사의 재무 부담을 키우고, 장기적으로는 미래 가입자에게 추가 비용이나 서비스 질 저하의 형태로 부담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규제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도 없다. 상조업계 역시 과거의 불투명한 영업 관행과 일부 사업자의 부실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수금이라는 소비자 자금이 사업자의 경영 실패나 무리한 투자로 훼손되는 일을 막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보호해야 할 서민'과 '감시해야 할 기업'을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다.

 

정부가 진정으로 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한다면 통제의 끈을 조이는 것과 함께 건전한 사업자가 합법적인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숨통도 열어줘야 한다. 획일적인 운용 제한보다는 자산의 안전성·유동성·수익성을 함께 관리할 수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자산운용지침(IPS) 등을 마련하고, 투명한 관리 체계 안에서 자산을 운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조업계 역시 "규제가 과도하다"는 주장만 반복해서는 정부와 소비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업계 스스로 자율 규제와 자산 투명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선수금이 어떻게 관리되고 어떤 원칙에 따라 운용되는지 시장에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건전한 사업자와 부실 사업자를 시장에서 구분할 수 있는 장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소비자 보호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손발을 묶는 것이 아니라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의 디테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거친 규제보다 외양간은 튼튼하게 고치되, 소가 굶지 않도록 여물을 줄 길은 열어두는 정교한 정책의 디테일을 기대한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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