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한 사람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통째로 삼키는 경우가 있다. 질병·장애·정신질환·노령 등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거나 생계를 책임지는 아동·청소년·청년을 '영케어러(Young Carer)' 또는 '가족돌봄청년'이라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 이 존재가 공론화된 계기는 2021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던 20대 청년의 사건이었다. 그 이후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서면서, 가족돌봄이 개인의 효심이 아니라 복지제도의 공백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케어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돌봄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돌봄 책임이 생애주기상 학업과 진로 이행이 집중되는 시기에, 그것도 공적 지원 없이 한 사람에게만 부과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학업 중단, 진로 유예, 저임금 일자리로의 조기 진입, 만성적인 우울이 서로 맞물린 채 누적된다. 즉 영케어러 문제는 '지금 힘든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과 사회적 배제가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구조의 문제다.
실태는 통계로 확인된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4월부터 9월까지 실시한 '가족돌봄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우울 유병률은 61.5%로 일반 청년(8.5%)의 7배를 넘었고, 돌봄을 전담하는 주돌봄자의 경우 70.9%에 달했다. 삶에 불만족한다는 응답도 22.2%(일반 청년 10.0%), 주돌봄자는 32.9%였으며,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응답은 36.7%, 주돌봄자는 46.8%로 나타났다.
돌봄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도 적지 않다. 13~34세 4만3천83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돌봄청년은 주당 평균 21.6시간을, 주돌봄자는 32.8시간을 가족 돌봄에 쓰고 있었다. 응답자의 66.9%가 돌봄 비용을 직접 지출했고 월평균 지출액은 62만3천원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경험률은 10.78%로 일반 청년(2.4%)의 4배를 넘었다. 이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지원은 생계비(75.6%), 의료 지원(74%), 휴식 지원(71.4%) 순이었다.
문제는 규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장애부모를 둔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영케어러) 실태와 과제' 보고서는 국내 영케어러의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 않았으며, 관계 부처 역시 충분한 통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준용해 아동·청소년 인구의 5% 이상으로 추정할 경우, 국내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은 2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당사자의 목소리는 통계보다 구체적이다. 한 영케어러는 "아버지가 수술을 받으면서 가정 형편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급식비가 밀려 새 학기 교과서를 살 형편도 되지 않아 교육청이 나눠주는 교과서를 받아 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케어러는 학점을 잘 관리해 해외에 나갈 기회를 얻고도 "혼자 힘들다"는 아버지의 말에 이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제적 사정과 가족 부담 때문에 가장 크게 잃은 것으로 "시험 공부를 전업으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돌봄을 가족의 자연스러운 의무로 보는 가족주의 규범이다. 이 규범 아래에서 청년의 돌봄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고, 당사자조차 자신을 돌봄 제공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둘째, 소득과 근로능력을 기준으로 설계된 선별적 복지체계다. 부모가 수급자가 아니거나 청년에게 근로능력이 있으면 가구는 제도의 시야에서 벗어난다. 셋째, 발굴 체계의 부재다. 영케어러는 스스로 신청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데, 정작 이들은 자신이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현장에서도 같은 진단이 나온다. 영케어러 당사자이자 관련 연구·정책 활동을 이어온 작가 조기현은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이 '조기 발견'과 '자립 지원'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돌봄 부담이 장기화돼 제공자와 당사자가 모두 피폐해진 뒤에 발굴하는 방식이 아니라, 돌봄 상황이 발생한 시점에 예상 가능한 피해를 낮추는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아픈 가족이 서비스를 거부해 지원이 무산되는 사례가 잦다는 점을 들어, 신뢰를 쌓을 시간을 확보하려면 사례관리자 1인당 담당 인원이 과도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제도는 최근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2025년 3월 제정된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위기아동청년법)이 2026년 3월 26일부터 시행되면서, 34세 이하 가족돌봄·고립은둔 아동·청년에 대한 국가의 보호책임과 발굴부터 지원까지의 전달체계가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전담기관인 '청년미래센터'는 2024년 8월 인천·울산·충북·전북 4개 시·도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26년 8개 시·도로 확대되며, 단계적으로 전국 확대가 추진된다.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온라인 창구 '청년ON'으로 신청할 수 있다.
현금과 서비스 지원도 늘고 있다.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족돌봄청년에게는 자기계발·건강관리·심리회복 등에 쓸 수 있는 '자기돌봄비' 200만원이 지원되며, 2026년 지원 대상은 기존 2천500명에서 5천명으로 두 배 확대됐다.
정부는 2026년 9월부터 가족돌봄 특별지원 사업을 전국 광역시·도로 확대해 13~34세 가족돌봄청년이 청년미래센터의 밀착 사례관리와 함께 장학금·청년도전지원사업 등을 연계 지원받도록 할 계획이다. 시범사업 성과도 축적되고 있다. 전북 청년미래센터는 2024년 출범 이후 765명에게 약 13억4천300만원 규모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고, 민관 협업으로 약 2억3천만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해 114명을 별도 지원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이어진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전수조사를 거쳐 매월 25만원의 '가족돌봄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고, 서울시는 가족돌봄청년 전담기구를 통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3년 제정한 조례를 2025년 10월 '경기도 가족돌봄 아동·청년 지원 조례'로 전부개정하며 지원 대상을 아동까지 넓히고 도지사의 책무를 '노력'에서 '정책 수립·시행 의무'로 강화했다. 도내 가족돌봄청년(13~34세) 추정 규모는 최소 2만191명에서 최대 23만30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다만 이러한 지원이 실제로 누구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문제는 이렇게 마련된 제도가 정작 당사자에게 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서 짚은 '발굴 체계의 부재'는 지원제도가 확대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원의 출발점이 여전히 본인의 신청이지만, 영케어러 상당수는 자신이 지원 대상이라는 사실은커녕 스스로가 '돌봄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케어러를 대상으로 연구와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한 진저티프로젝트는 당사자를 찾고 만나는 일 자체가 가장 어려웠으며, 연락이 닿아도 스스로를 가족돌봄 당사자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한다.
실제로 만난 청년들 가운데는 "그런 말로 부르지 말라, 가족돌봄이 아니다"라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조기현 작가 역시 서비스가 존재함에도 아픈 가족이 이용을 거부해 지원이 무산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제도의 확대만으로는 부족하고, 신뢰 관계를 쌓아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발굴은 신청주의가 아니라 아웃리치여야 한다. 학교·의료기관·복지관이 위기 징후를 감지해 전담기관으로 연계하는 경로가 상시 작동해야 하며, 교사와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인지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돌봄이고, 당신은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학교와 병원, 지역사회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
둘째, 현금 지원은 서비스와 결합될 때만 효과를 낸다. 자기돌봄비가 실질적인 '돌봄으로부터의 휴식'이 되려면 아픈 가족에 대한 일상돌봄·장기요양 서비스가 함께 제공돼야 한다. 셋째, 사례관리 인력의 적정 배치와 장기적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넷째, 심리상담과 학습·진로 지원은 시혜가 아니라 생애 이행을 회복시키는 투자로 설계돼야 한다.
영케어러는 가족을 지탱해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감당해 온 돌봄은 사실상 사회가 부담해야 할 몫을 대신한 것이었다. 법과 전담기관, 수당이 마련된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의 존재를 그들이 알게 하는 일, 그리고 그 문턱을 낮추는 일이다. 돌봄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대가가 한 청년의 미래여서는 안 된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정경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