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이 생산성 향상을 넘어 국내 지역 간 노동시장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생성형·에이전틱 AI와 관련된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피지컬 AI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비수도권의 고용 감소를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지역별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정민수 한국은행(한은) 지역경제조사팀장은 15일 대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분석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AI를 생성형(Generative), 에이전틱(Agentic), 피지컬(Physical)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직업별·지역별 AI 노출도를 산출해 노동시장에 미칠 위험과 기회 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생성형 AI는 사무직과 판매직, 전문가 직군에서, 에이전틱 AI는 관리직에서, 피지컬 AI는 장치·기계조작 및 단순 노무 직군에서 각각 높은 노출도를 보였다.
지역별 격차도 뚜렷했다.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의 노출도는 서울, 세종, 경기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식서비스업과 전문직이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 집중된 산업구조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피지컬 AI의 노출도는 제조업과 농림어업 비중이 높은 경북, 전남, 울산 등 비수도권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의 실제 고용 변화에서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확인됐다.
2023년 이후 3년간 생성형 AI 노출도가 높은 일자리는 24만7천명 증가했다. 이 가운데 수도권에서 늘어난 일자리가 19만9천명으로 전체의 80.8%를 차지했다.
지난해 에이전틱 AI 고노출 직업에서 증가한 일자리 역시 전체 10만5천명 가운데 9만3천명(88.3%)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피지컬 AI 고노출 직업에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육체노동 비중이 높은 직종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서 장기간 감소세를 이어갔다.
다만 한은은 AI 노출도와 고용 변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 분석은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AI 확산이 지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연령별로도 차이를 보였다.
AI 확산 이후 전문성이나 경험, 연륜, 사회적 역량 등을 요구하는 일자리의 수요가 증가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인력 공급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20대 청년층의 경우 생성형 AI와 에이전틱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의 취업자 수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모두 감소했다. 지역별 차이 역시 뚜렷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직후의 청년층은 지역과 관계없이 전문성이나 경험, 연륜 등을 충분히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분석됐다.
한은은 향후 AI 투자가 수도권에 집중될 경우 기존의 지식서비스업과 반도체 제조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수도권에서는 피지컬 AI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경우 제조업을 비롯해 운수업, 숙박·음식업 등의 고용 감소가 확대될 가능성을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반면 AI와 인간의 협업 모델이 발전하면 수도권에 집중된 인재와 연구개발(R&D)의 집적을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AI가 인적 자본이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의 생산성을 높이고 공급 제약을 완화해 지역 서비스업 성장을 촉진할 가능성도 기회 요인으로 꼽았다.
비수도권의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통해 청년층의 지역 이탈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으로 제시됐다.
한은은 AI를 지역 간 노동시장 격차를 완화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지역 서비스업 전문화를 촉진하고, 지역 제조업의 지식서비스화를 강화하는 한편 지역 거점대학을 AI 허브로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심포지엄 개회사에 나선 신현송 한은 총재는 AI 도입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인프라뿐 아니라 조직과 제도까지 함께 바꾸는 '보완적 혁신(complementary innovation)'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총재는 경제사학자 폴 데이비드가 주목했던 최초의 산업용 발전기인 '다이너모'를 사례로 들며 기술 도입만으로 생산성이 곧바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19세기 말 공장의 동력원이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바뀌었을 당시에도 생산성 향상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공장의 설비구조가 기존 증기기관 체제에 맞춰져 있어 실제 변화는 더디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 공장 구조를 전기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면서 생산성 향상이 본격화됐다는 설명이다.
신 총재는 AI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새로운 역량을 갖추고 기업의 업무방식을 바꾸는 동시에 AI 인프라를 지역 산업과 시장에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AI가 지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인지는 기술을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보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역경제를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