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채용 공고 게시판에서 '서비스 기획' 직무를 찾아보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요즘 심상치 않은 말이 돈다. 신입 기획자 채용 공고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몇몇 IT 기업은 올해 상반기 기획 직군의 신입 채용을 열지 않거나, 경력직 중심으로 인력을 모집했다. 서비스 기획을 목표로 준비해 온 학생들에게는 지원할 수 있는 자리부터 찾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비스 기획자는 이용자의 불편을 찾고, 이를 해결할 기능과 운영 방식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시장을 조사하고 경쟁 서비스를 분석하는 일부터 요구사항을 문서로 정리하고 개발·디자인 담당자와 의견을 맞추는 일까지 업무 범위가 넓다.
그동안 신입 기획자는 자료 조사와 회의록 정리, 기획서 초안 작성 같은 일을 맡으며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웠다. 작은 업무를 반복하면서 어떤 정보가 의사결정에 필요한지 익히고, 점차 더 큰 문제를 맡는 방식이었다.
이런 업무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생성형 AI다. 기획자가 시간을 들여 수행하던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초안 문서 작성 등을 AI가 짧은 시간 안에 도울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유사 서비스의 기능을 비교하는 표나 사용자 인터뷰 질문의 초안을 만드는 작업은 AI를 활용하면 한결 빨라진다. 숙련된 기획자가 결과를 검토하고 수정한다면, 예전처럼 초급 인력에게 해당 작업을 맡길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그 작업들이 신입에게는 실무를 배우는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데 있다. 자료를 직접 찾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서비스의 구조를 이해하고, 선배 기획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판단 기준을 익힐 수 있었다. AI가 반복 업무를 흡수하면 기업은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신입이 경험을 쌓을 기회는 줄어들 수 있다. 채용 문턱이 높아졌다고 느끼는 취업준비생들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신입 채용의 변화가 모두 AI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경영 상황과 채용 규모, 조직별 인력 수요도 공고 수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AI가 기획 업무의 일부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이 신입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문서를 얼마나 빠르고 깔끔하게 작성하느냐만으로 역량을 보여주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 4학년 졸업예정자는 "기획 직무를 준비하면서 서류 통과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 걸 체감한다"라며 "예전엔 아이디어와 열정만 보여줘도 됐다면, 지금은 AI가 못 하는 걸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은 "오히려 AI 덕분에 포트폴리오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쉬워졌다"라며 "AI를 잘 다루는 것 자체가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는 취업준비생에게도 유용한 도구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관련 사례를 폭넓게 살펴보거나, 인터뷰 질문을 다듬고, 복잡한 내용을 읽기 쉬운 문서로 정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비슷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보기 좋은 결과물만으로는 차이를 만들기 어렵다. 포트폴리오에 정돈된 기획서가 있어도 왜 그 문제를 선택했는지, 어떤 근거로 해결책을 정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평가 기준에도 이런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 AI가 그럴듯한 초안을 만들어내는 시대에는 '기획서를 잘 쓰는 사람'보다 '왜 이 방향이 맞는지 판단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실제로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여러 해결책 중 우선순위를 정하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방향을 수정하는 능력이 주목받는다.
기획은 혼자 문서를 완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개발 일정이나 운영 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운영 담당자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낼 때 목표를 분명히 하고 합의점을 찾는 일도 기획자의 몫이다. AI는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결정의 결과를 책임지는 경험까지 대신해 주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학생 때부터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거창한 서비스를 출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나 동아리에서 겪는 불편을 발견하고, 이용자를 만나 원인을 확인한 뒤, 작은 해결책을 적용해 보는 것도 기획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규모보다 문제를 발견하고 검증하며 개선한 과정이다. 처음 세운 가설이 틀렸다면 어떤 근거로 생각을 바꿨는지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때도 완성된 화면이나 기획서만 나열하기보다 자신의 판단이 드러나도록 구성할 필요가 있다.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해결책을 고르기 전에 무엇을 확인했는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떤 의견 충돌이나 제약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식이다. AI를 사용했다면 어느 작업에 활용했고, 나온 내용을 어떻게 검토하고 수정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도구를 능숙하게 썼다는 사실보다 도구의 결과를 자신의 판단으로 다뤘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기획 직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본다. AI가 초급 단계의 반복 업무를 흡수하면서 여러 직군에서 '신입이 일을 배우며 성장하던 사다리'의 낮은 칸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렇다면 취업준비생에게 필요한 것은 경력직 수준의 성과를 무리하게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학교와 대외활동, 개인 프로젝트에서 맡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 본 경험을 쌓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분명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대학의 취업 지원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AI 활용법을 알려주는 교육에 더해, 학생이 실제 이용자를 만나고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취업준비생 역시 AI로 기획서 한 편을 빠르게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현실에서 확인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료 조사와 초안 작성에 쓰던 시간을 문제를 더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 결과를 살피는 데 돌릴 수 있다면 AI는 위협인 동시에 성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AI를 얼마나 능숙하게 쓰느냐만이 아니다. AI가 만들어 낸 결과물 너머에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며, 실행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느냐다. 신입 기획자를 향한 문이 좁아졌다고 느끼는 취업준비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기획서 한 장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실행 경험을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 청년서포터즈 9기 신유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