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중동 전쟁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국내 주식 매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원화 가치가 급락하며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하는 등 외환시장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489.3원을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8년 이후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지난주에는 환율이 장중 1,517원을 돌파하며 주간 평균도 1,500원을 넘어섰다. 주간 기준 1,500원대 진입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 만이다.
환율 급등의 핵심 요인은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자금 이탈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약 29조8천억 원을 순매도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달까지 포함하면 두 달간 순매도 규모는 50조 원을 넘어섰다. 특히 최근 일주일간 순매도 규모만 13조 원을 넘어서며 매도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구조적 불안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됐고, 동시에 AI 및 반도체 산업에 대한 고평가 논란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금리 상승과 원화 약세에 따른 환차손 우려까지 겹치며 외국인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AI와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우리 증시 과열 등이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반도체 전망이 아직 좋지만 중동 전쟁과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 회피 국면에서 외국인들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이 코스피를 순매수하면서 주가를 받치고 있는 것도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익 실현을 하기 좋은 여건"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글로벌 IT 기업의 기술 변화로 반도체 수요 둔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반도체 중심 수출 구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점 역시 중동 리스크에 취약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환율 상승 압력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대가 지속될 경우 원화 약세 흐름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올해 하반기까지 1,450~1,510원 범위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전쟁 확산 시 1,550원 돌파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고유가 환경이 지속될 경우 환율의 새로운 균형 수준 자체가 1,500원대로 상향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와 함께 국내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 요인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120∼130달러대에서 유지된다면 환율 균형점 자체가 1,500원으로 이동할 것"이라면서 "전쟁이 완화하더라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연평균 환율은 역사상 가장 높은 1,450원대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걸프 국가에서 이미 파손된 에너지 시설이 정상화되는 데 수년이 걸리고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1,500원대 환율이 유지될 가능성이 상당이 커졌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김두환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