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투 운동'이 정치권까지 번진 가운데 국회에서 성희롱, 성폭행 등 성폭력을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례가 수백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자 중에는 국회의원도 포함되어 있어 충격을 주고 있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밝혔졌다.
유승희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달 3~5일 국회의원과 국회의원실 근무 보좌관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유 위원장은 "국회사무처 직원과 지역에 있는 보좌진은 설문 조사 대상에서 빠졌고, 의원실 인턴은 조사 대상에 들어갔다"며 "국회에 근무하는 보좌진 2750여명을 대상으로 총 1818부의 설문지를 배포해 958부를 회수했다"고 밝혔다.
조사영역은 △기본 인적사항 △국회 내 성폭력범죄 피해경험 △국회 내 성폭력범죄 피해에 대한 대응방식 △성폭력범죄에 대한 국회 내 대응 시스템 등으로 나눠 이뤄졌고, 성폭력 범죄 실태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요인을 성별과 직급으로 보고 이에 대한 교차 분석으로 이뤄졌다.
응답자들은 성별과 직급, 근무 기간, 소속 정당 정도만 기입해 익명으로 참여했으며, 가해 국회의원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조사 결과(중복 응답 포함)에 따르면 국회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목격하거나 들은 적 있는 성폭력 범죄는 성희롱(338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가벼운 성추행(291명), 심한 성추행(146명), 스토킹(110명), 음란전화·음란문자·음란메일(106명), 강간미수(52명), 강간 및 유사강간(50명) 순으로 집계됐다.
직접 피해를 본 성폭력은 성희롱(66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가벼운 성추행(61명), 음란전화·음란문자·음란메일(19명), 심한 성추행(13명), 스토킹(10명) 등의 순이다.
특히 강간 및 유사강간(2명), 강간미수(1명) 피해를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어 충격을 주었다.

직접 피해를 본 응답자는 모든 성폭력 범죄 유형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고 현재 직급은 여성은 7급 이하, 남성은 6급 이상이 다수였으며, 가해자는 6급 이상이 다수였다.
가해자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 국회 내 성폭력 범죄가 위계위력에 의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여성 응답자가 지목한 성희롱 가해자에는 국회의원 8명, 가벼운 성추행을 저지른 가해자로 국회의원 2명이라고 유 위원장은 설명했다.
또 음란전화·음란문자·음란메일을 직접 받았다는 여성 국회의원 피해자도 1명 있었고, 성희롱 피해를 직접 입었다고 밝힌 여성 국회의원 피해자도 1명이었다.
조사 결과 국회 내 성폭력 범죄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응답자 중 성폭력 피해를 입고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86명(여성 85명)에 불과했다.
도움을 청한 상대는 같은 의원실 동료, 다른 의원실 동료, 같은 의원실 상급자 등이지만 57.1%는 '적절한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으나 42%는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2차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대응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71.1%가 지난 3년간 국회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고, 국회 사무처 인사과에 성희롱 고충 전담창구가 있음에도 다수(94.3%)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회 내 성폭력범죄가 발생한다면 해당 기구가 적절히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응답이 64.1%에 달했다.
유승희 위원장은 "국회에서 이 같은 실태조사는 처음 이뤄진 것으로, 높은 회수율과 남성 응답률은 성폭력 문제가 남녀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상급 보좌직원 여성채용할당제, 국회 공무원의 성범죄 신고의무 신설, 국회의원과 보좌진 성인지교육 의무화 등 법·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해자 중 현역 의원이 포함된 것과 관련 "국회의원의 경우 보좌진과 별도로 분리해 데이터를 낸 것이 아니라 같이 포함해서 데이터를 낸 것"이라며 "데이터가 별도로 따로 나오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성희롱 경험이 가장 많고 간접적인 피해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