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달콤했던 추억, 예술이 되다"…국민 초콜릿 ‘가나’의 반세기 기록

등록 2025.05.01 08:00:02 수정 2025.05.01 08:00:10
신현숙 기자 shs@youthdaily.co.kr

‘예술품을 만들라’는 한마디…초콜릿 50년이 전시로 재탄생
픽셀·도도새·숯 오브제까지…가나, 감각으로 기억을 말하다
오감 자극한 체험형 전시회…‘가장 한국적인 간식’의 재해석

 

【 청년일보 】 “제품 말고, 예술품을 만들라”

 

1975년, 한 기업의 창업주는 이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는 반세기 뒤 잠실 한복판에서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의 ‘국민 초콜릿’이 이제는 미술관 벽에 걸렸다.

 

롯데웰푸드의 ‘아뜰리에 가나: since 1975 – 행복은 초콜릿으로부터’ 전시는 가나 초콜릿 50주년을 기념해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6월 29일까지 열린다.

 

단순한 브랜드 전시가 아니다. 한 세대를 관통한 감정과 기억, 그리고 '맛의 역사'를 담아냈다.

 

 

◆ “초콜릿은 그냥 먹는 게 아니더라고요”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달달한 향이 반긴다. 초콜릿 향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우는,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이끄는 전시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처음 초콜릿을 먹었을 때를 기억하나요?”

 

그 질문에 나도 모르게 나만의 첫 초콜릿을 떠올렸다. 어릴적 가족끼리 마트에 갔다가 처음으로 먹어봤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간식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줍은 고백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가나 초콜릿은 1975년 ‘예술품을 만들어달라’는 고(故)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주문으로 시작됐다.

 

이후 부드러운 감촉을 위해 ‘마이크로 그라인딩’, 진한 풍미를 위해 ‘BTC 공법’을 도입했고, 그 맛은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한마디로 가나 초콜릿의 50년은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느냐의 기록이었다.

 

 

이 부드러움은 현대미술의 언어로도 표현된다. 김미영 작가는 초콜릿의 질감을 웻온웻 기법과 두꺼운 마티에르로 표현했다. 두껍게 덧칠된 붓자국을 보는 것만으로도 초콜릿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 픽셀, 숯, 그리고 도도새까지…가나를 말하는 법

 

전시에는 본격적으로 ‘가나 초콜릿을 예술로 말하는 법’이 펼쳐진다. 먼저 마주하는 건 그라플렉스의 섹션이다. 작가의 시그니처 캐릭터 ‘볼드’는 얼굴이 없다.

 

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초콜릿을 선물하고, 나누며, 웃고 떠드는 그 수많은 순간들이 프레임 안에 픽셀처럼 박혀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일본 작가 코인 파킹 딜리버리는 더 은유적으로 느껴졌다. 푸른 가면의 캐릭터 ‘시라이상’이 핸드폰을 든 채 초콜릿을 바라보는 장면은, 디지털 시대의 단절된 관계를 은유하면서도 ‘초콜릿은 함께 나눌 때 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이어 다음으로는 도도새가 등장한다. 김선우 작가는 멸종한 도도새를 되살려, 정글을 탐험하며 황금 카카오를 찾는 ‘가나의 분신’으로 그려냈다.

 

앙리 루소의 명작 '꿈'과 '서프라이즈'를 오마주한 이 장면은 마치 초콜릿의 여정을 따라가는 탐험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도도새는 날 수 없지만, 풍선을 타고라도 날겠다는 희망을 보여준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다.

 

 

설치 미술가인 박선기 작가는 숯과 투명 실을 활용해 조용한 여운을 남겼다. 하늘에 떠 있는 조형물들은 보는 위치에 따라 흩어지기도 하고 하나로 보이기도 했다.

 

이는 초콜릿을 쪼개며 나누는 과정에서 생기는 구조를 은근히 닮아 있었다. 형태 없이 흩어지는 숯 조각들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가나 초콜릿이 50년 동안 지켜온 가치가 얼마나 단단한지 더 잘 느껴졌다.

 

 

이어 ‘가나 라운지’를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초콜릿을 전시한 공간이 아니라, 그 시절 우리가 먹었던 초콜릿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들로 채워져 있었다.

 

원미경, 채시라, 전지현, 아이유까지 시대별 광고 모델들과 함께 한 ‘국민 초콜릿’의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에 적힌 문장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가 먹은 건 초콜릿이 아니라 순간이었다”

 

 

그 한 조각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어떤 날의 감정이었고, 기억이었고, 온기였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보상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 지금의 나와 마주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나 초콜릿은 이제 50년의 시간을 넘어, ‘착한 카카오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지속가능한 초콜릿의 길을 준비 중이다.

 

이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약속까지 함께 담고 있다.

 

이제 가나는 기억의 맛을 넘어 미래의 가치를 준비하고 있다.
 


【 청년일보=신현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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