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에 이란·이스라엘 전쟁까지"…유통업계·소비자, 깊어지는 '한숨'

등록 2025.06.17 08:00:01 수정 2025.06.17 09:50:57
김원빈 기자 uoswbw@youthdaily.co.kr

새정부 출범으로 국내 정치적 불안정성 일부 '해소'…한은 "경기 하방 압력 지속"
이란·이스라엘 전쟁 등 국제적 불확실성 증대…석유 활용 제품가 인상 불가피
유통업계 "가격 인상 및 브랜드 타격 우려"…"대체 원산지 선제적 모색 필요"

 

【 청년일보 】 이란·이스라엘 전쟁 발발 등 국제적 불안정성이 가중됨에 따라 유통업계의 혹한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대체 가능한 원자재 수입처 발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정부 역시 기업들이 물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수 있는 자율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는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편의점 등 주요 유통업체들은 지속적인 경기 하방 압력 속에 매출과 영업이익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일부 해소됐지만,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점증하고 있다"며 "원자재를 수입하는 유통업계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유통업계에서는 새 정부 출범으로 내수 경기가 서서히 살아날 것이라는 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지난 6개월 이상 계속된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지갑이 다시 열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이로 인해 실제 일정 부분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편의점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도 "비록 얼마 전에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일정 부분 소비 심리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며 "회사 차원에서도 이에 맞춰 하반기 다양한 프로모션과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해외 부문에서 큰 악재를 맞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국내 경제 상황은 업계의 기대와는 달리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한은)은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한다는 명분 하에 기준금리를 2.5%로 인하한 바 있다.

 

당시 한은 측은 "가계대출 증가세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하지만, 물가 안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한은은 내수가 점차 회복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면서도, 현재 국내 경제가 분명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이와 같이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통업계의 기대감을 저하하는 요인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업계는 완화되고 있는 국내의 불안정성과 달리 악화하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업계는 최근 발발한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국내 생필품과 소비재의 상품 판매가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원재료 가격의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 등에 대한 선제 공습을 가한 이후, 이란이 이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문제는 전쟁이 발발한 중동 지역이 생필품, 소비재의 주요 원재료인 석유 가격 폭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는 주요 원유 생산국이다.

 

한국석유공사의 '2023년 국내 석유 시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륙별 원유 수입 비중 가운데 중동이 71.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미주(19.1%), 아시아(6.9%) 등 순이다.

 

또한, 각종 상품 생산에 꼭 필요한  소비되는 LNG 역시 분쟁이 발생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는 가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거나, 이곳을 지나는 유조선을 공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지난 2018년 미국이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제재를 재개하자,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경고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중동지역의 국제적 불안정성이 아직 국내 경기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이전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생활비와 물가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OECD의 '2023년 식료품 물가 지수'에 따르면, 국내의 식료품 가격은 평균보다 47%나 높았다. 회원국인 38개국 가운데 스위스를 제외하면 가장 비쌌고,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와 같은 위험 요인이 소비자 물가에 더 직접적인 위협을 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 20여년 이상 근무한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제조 단가 자체가 상승할 경우 소비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특히, 이번 갈등처럼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는 경우 상품 제조업체들은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제조 단가 인상은 소비자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은 인상된 가격을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유통업체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라며 "현시점에서도 소비자들이 이미 지갑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보다 업계의 어려움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의 한 전문가는 "물가 인상, 더 나아가 내수 부진이 외부적 요인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 생필품에는 석유에서 추출되는 다양한 성분들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이 재료들의 가격이 폭등할 경우 기업이 어느 정도 고통을 감내한다고 할지라도 소비자가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가 인상은 유통업체의 매출, 영업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해당 기업의 자체적인 선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고 있다"며 "업계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서 업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유통업계의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정부는 물가 인상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주요 경제단체의 한 전문가는 "석유 등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원재료의 경우 국내 기업이 마땅히 취할 방법을 찾기 어렵겠지만, 대체 원산지이나 생산국을 찾을 수 있는 제품은 선제적으로 판매 경로를 마련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또한, 여러 단계를 과도하게 거치도록 되어 있는 현재의 유통 구조를 효율화해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다양한 유통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비효율 점포 감축, 소규모 인력 감축도 한동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그 야말로 유통업계의 '혹한기'가 가속될 것으로 예측돼 우려스럽다"고 전망했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한 학계 인사는 "유통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가까운 시일 내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기업도, 소비자도 각각 매출 및 영업이익 감소와 생활비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이재명 정부가 전(前) 정부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업에 압박을 가해 특정 상품에 대한 물가 인상을 저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도 기업이 자율적으로 물가 인상을 최대한 자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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