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열화 된 브랜드" ...아파트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그림자

등록 2025.07.21 08:00:06 수정 2025.07.21 08:00:39
김재두 기자 suptrx@youthdaily.co.kr

 

 

【 청년일보 】 "어디 사세요?" 간단한 질문 하나에 우리 사회의 불편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주거지가 곧 누구네의 삶의 수준을 규정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현실, 바로 아파트 브랜드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 듯 싶다.

 

최근 신축 아파트들은 ‘퍼스트’, ‘프레스티지’, ‘센트럴’ 등 외래어와 복합어로 치장(?)되어 아파트에 가치를 부여한 브랜드로 내세운다. 브랜드 명칭은 길고, 읽기도 어려운 경우 역시 더러 있어 보인다.

 

심지어 전라도 광주시에 위치한 아파트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는 무려 스물 세자다. 왜 우리는 이렇듯 화려하고 복잡한 명칭을 더 선호하게 됐을까.

 

지난 1990년대 1기 신도시때만 떠올려도 ‘분당 아름마을’, ‘일산 백마마을’, ‘평촌 꿈마을’, ‘산본 목련’과 같이 순수 우리말로 지어진 단지명이 정겹고 쉬웠다.

 

‘ㅇㅇ마을’이란 단지명은 단순한 주소의 개념을 넘어 공동체란 소속감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건설회사의 상호명이 붙여진 ‘한양’, ‘효성’, ‘풍림’ 등은 시공사를 표방했기에 그저 단순하고 기억하기도 쉬웠다.

 

지금은 다르다. ‘그라시움’ 같은 단어는 라틴어에서 따와 고급스러움을 내세운다. 반면, ‘가온마을’처럼 순우리말이 쓰인 이름은 친근한 이미지를 주지만, 최근엔 오히려 임대주택 등 서민적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진 게 사실이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단어의 느낌을 넘어 아파트 간, 나아가 사회 계층 간 보이지 않는 위계(?)를 드러낸다.

 

브랜드 아파트의 외래어 작명 경쟁은 건설사의 마케팅 전략이 부른 결과다. ‘더샵’, ‘자이’, ‘푸르지오’ 등 익숙한 브랜드명에 더해 입지, 조경, 커뮤니티 등 아파트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지역명이나 외래어를 합쳐 ‘서반포 써밋 더힐’처럼 낯설고도 과장된 이름까지 나온다. 몇 해 전에는 신월동에 위치한 아파트가 ‘목동’ 이름을 쓰려다 법정 다툼까지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러한 이름들은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려는 건설사의 욕망과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열망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콘크리트로 된 한 건물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사회적 계급과 생활 수준의 상징이 되고 ‘주공아파트’, ‘LH아파트’라는 이름엔 때론 편견이 따라붙는다.

 

또한, 같은 지역임에도 ‘브랜드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단지, 고급스러운 이름과 평범한 이름 사이에는 분명한 차별의 시선이 존재한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 지역사회 곳곳에서 아파트 이름이 어느새 새로운 ‘선 긋기’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심리적 위화감을 넘어 실질적인 자산 가치의 격차까지 만들어낸다. 아파트 이름이 가격 프리미엄으로 이어지고, 시장의 양극화를 조장한다.

 

건설사들은 더 고급스러운 ‘하이엔드’ 브랜드를 쏟아내고, 기존 브랜드는 순위에서 밀려나며, 결국 ‘내가 사는 곳의 이름’이 곧 ‘내 사회적 지위’가 되는 흐름을 강화한다.

 

물론, 아파트의 품질 개선 노력과 주거 선택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아파트 이름이 우리 사회의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고, 불필요한 차별을 낳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2024년 ‘새로 쓰는 공동주택 이름 길라잡이’를 만들어, 아파트 명칭을 쉽고 정감 있게, 더 나아가 우리말과 실제 지명을 살려 짓도록 권장하기도 했다. 이름 경쟁이 사회 통합을 해치고, 새로운 차별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되묻게 된다. 과연 ‘좋은 아파트’는 무엇인가? 화려하고 난해한 외래어 대신, 공동체 가치를 담은 이름은 다시 빛을 볼 수 없는 걸까? 이름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성찰하고,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갈 합의를 모을 때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엘리베이터, 복도, 놀이터 등 매일 이웃과 마주치며 우리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층간 소음, 주차 갈등 같은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름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이름 아래 쌓이는 일상과 이웃, 연대의 가치다. 우리가 사는 집이, 그 이름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공동체의 가치를 생각할 때다.

 


【 청년일보=김재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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