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2026년은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에게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와 유럽의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등이 맞물리며 글로벌 전기차(EV) 캐즘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다만 올해 글로벌 전기차 업황 자체는 지역에 따른 편차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폭이 다소 둔화되더라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역성장까지 예상되는 곳이 있어서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는 보고서에서 유럽 시장 전기차 판매가 올해 전년 대비 14% 늘어난 약 490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성장세가 둔화되기는 하나 성장 흐름 자체는 지속된다. 유럽은 지난해 역시 전기차 판매가 전년 대비 약 33% 증가했다.
중국 시장 역시 올해 전기차 판매량이 1만550만여대로 전년 대비 16.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0~2025년 연평균 성장률인 64%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성장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반면 미국 시장은 전망이 특히 암울하다. BMI는 민국 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9% 급감한 110만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 판매량은 150만여대 수준이었다.
현 상황에 대해 국내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주력한 것이 미국시장이다 보니 업황이 상대적으로 더 안 좋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시장 상황에 다소 차이가 있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투자를 집중한 미국 시장 상황이 특히 좋지 않아 체감하는 어려움이 더 크다는 뜻이다.
미국 시장 상황이 특히 어려워진 이유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활성화에 힘을 실리게 만들었던 환경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등 내연기관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 10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을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기업평균연비규제(CAFE)도 대폭 완화했다. CAFE는 제조사가 판매한 전체 차량의 평균 연비를 정부 목표치 이상으로 맞추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일명 ‘전기차 강제 할당제’ 통해왔다. 전체 판매 차량의 평균 연비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서는 사실상 전기차 판매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영향이 나타나며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미국 시장은 전기차 판매량이 빠르게 줄고 있다. 지난해 8~9월 월 14만대 수준을 기록했던 전기차 판매량은 세액공제가 끝난 10월 6만9천대, 11월 6만5천대 등 감소세에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투자 속도를 늦추고 있는 만큼 불황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국내 배터리 3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버팀목으로 삼아 생존을 모색할 방침이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AI 데이터센터 붐 등의 영향으로 ESS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해당 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러한 기조는 당장 올해 국내 배터리3사의 신년사에서도 확인됐다.
김동명 LG엔솔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ESS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기회”라며 “적기 공급을 위해 북미, 유럽, 중국 등에서의 ESS전환을 가속화해 공급 안정성과 운영 효율화도 함께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주선 삼성SDI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올해는 재도약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 사장은 선택과 집중(Select) 등을 강조했다. 이석희·이용욱 SK온 사장은 “미드니켈·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핵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ESS를 중심으로 수주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전했다. 특히 삼성SDI와 SK온의 신년사에서는 전기차란 표현이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 집중 투자한 결과 체감 어려움이 확대된 배터리 3사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ESS 사업에서 다시 한번 미국 시장 집중·의존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예상된다. AI데이터센터 붐 등의 영향으로 미국 ESS 시장의 중요도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전기차 시장 어려움이 커졌다면, ESS 사업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가 호재가 될 전망이다. 이는 중국 업체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미국을 필두로 주요국의 공급망 탈중국 기조가 펼쳐지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가 열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JP모건은 “LG에너지솔루션은 2028년까지 미국 ESS 시장 점유율을 35% 이상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며 “한국 배터리사의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이 줄어도 기존 전기차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다만 숙제는 남아있다. ESS 배터리의 중심인 LFP는 중국 업체들이 굳건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분야인 만큼 이들과의 경쟁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을 위한 우선 과제로 가격 경쟁력 확보를 꼽았다. 국내 기업 제품보다 저렴하면서도 성능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만큼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당장 공급망의 중국 차단 기조의 덕으로 다소의 시장 점유율 확보는 가능하겠지만, 영향력을 확대하고 확실한 대체자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 해결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난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의 시발점이 된 미국 시장에서 ESS라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다시 한번 볕 들 날을 맞이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청년일보=신영욱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