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출범 첫 날 야심찬 목표를 내놨다. 현재 34기가와트(GW) 수준인 재생에너지를 2030년까지 100GW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김성환 장관은 출범식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체계를 대전환하고 탄소중립 산업을 국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이른바 '햇빛·바람·마을 연금' 제도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 수익을 환원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전남 신안군이 2021년부터 2025년 4월까지 247억원을 주민에게 지급하며 인구가 660명 증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민협동조합이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참여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판매한 수익을 배당금으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 뒤에는 현실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계통 안정성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30년 국내 전력계통에서 수요반응과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약 1800MW의 유연성 부족이 발생한다. 풍력과 태양광은 풍속과 일사량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하게 변하는 변동적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급 균형을 유지하는 전력계통의 유연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연성 설비 투자도 시급한 과제다. 연구원은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에 바이패스 스택을 설치해 가동 준비 시간을 1~2시간 이내로 단축하거나, 가변속양수발전을 활용해 주파수를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설비 투자에 대한 보상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 운영예비력 정산 제도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 비해 예비력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ESS 중앙계약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2025년 제1차 입찰에서 563MW 규모를 확정했고, 2029년까지 총 2.22GW를 구축할 계획이다. 전력거래소나 한국전력공사가 ESS 자원을 통합 제어해 재생에너지 변동성에 실시간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PJM은 1초 이내 반응하는 ESS를 활용해 주파수를 조정하고, 독일은 1차 주파수 유지 시장에 ESS를 투입하는 등 해외에서는 이미 검증된 방식이다.
그러나 제도적 완성도는 여전히 미흡하다. ESS 운영 보상 재원을 전력 요금에 반영할지, 정부 재정으로 지원할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요금 반영은 전기료 인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성도 걸림돌이다. 과거 ESS 화재 사고로 신뢰가 추락한 만큼 기술 표준 강화와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한 전력 산업 전문가는 "ESS 중앙계약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고 계통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라면서도 "보상 체계의 불투명성과 안전 규제 미비 등 제도적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햇빛·바람연금 제도 역시 논란의 소지가 크다. REC 판매 수익이 재원인데, 이는 결국 전 국민이 부담하는 전기 요금이나 한국전력공사의 재정으로 충당되는 구조다. 특정 지역 주민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형평성 문제와 비용 전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REC 가격 변동성도 변수다. 가격이 급락하면 연금 지급이 중단될 수 있고, 이는 주민 반발로 이어져 재생에너지 수용성 자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생에너지 전문가는 "지자체 조례 수준이 아닌 정부 차원의 종합 가이드라인으로 배분 기준과 혜택 범위를 명확히 하고, 일관성과 지속성을 갖춘 장기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 유연성 설비 투자,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은 좌초되거나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 100GW 목표가 실현 가능한 계획인지, 아니면 허황된 구호에 불과한지는 앞으로 5년간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냉정한 현실 진단과 치밀한 제도 설계 없이는 에너지 전환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