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청년일보 】 정부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과 함께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전력망 확충, 일명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을 본격화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 협의체는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며,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와 서해안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절박한 조치로 평가받는다.
위원회는 총 99개 송변전 설비 구축 사업을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하고, 인허가 절차 간소화 및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추진 등 사업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특례를 부여했다.
핵심 사업으로는 2030년대 서해안을 중심으로 초고압직류송전(HVDC) 망을 구축하고 2040년대까지 남해안, 동해안을 연결하는 U자형 해상 전력망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HVDC는 기존 교류 송전 방식 대비 전력 손실이 적고 장거리 송전 및 해저·지중화가 용이해 재생에너지 연계에 최적화된 기술로 평가받는다.
현재 한국 전력망은 수도권의 전력 부족과 비수도권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 문제라는 이중고를 동시에 겪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력망이 이를 수용하지 못해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계통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력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량은 전년 대비 증가 추세를 보였으며, 경제계는 전력망 확충 지연이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특별법 시행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별법을 통한 '속도전' 이면에는 전력 사업의 숙명적인 과제인 지역 주민의 수용성 확보라는 해묵은 난제가 놓여있다.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은 필연적으로 전자파 우려, 경관 훼손, 재산권 침해 등의 민원을 동반하며, 이는 과거 밀양 송전탑 갈등처럼 격렬한 사회적 충돌로 번진 전례가 있다.
일부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추진 방식에 대해 냉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A 대학교 김 모 교수는 “전력망 확충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인허가 절차 간소화가 지역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별법에 명시된 지자체의 60일 회신 의무 등 행정 간소화 조치가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사업 추진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며, 기술적 검토만큼 지역과의 소통과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전력망 확충이 수도권 중심 개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비수도권 지역에 송전시설 부담을 일방적으로 지우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인허가 권한을 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주도하는 조항이 지자체 권한과 주민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 확보와 지역 이익 공유 모델의 투명한 제시를 촉구했다.
정부는 주민 지원 및 보상 확대를 약속했지만, 아직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아 주민들은 보상 기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전력망 확충은 불가피한 과제이지만, 사업 혜택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고 부담은 다른 지역이 지는 구조에서는 갈등이 필연적이다. 위원회는 단순히 기술적 검토와 사업 속도 확보를 넘어, 갈등 조정자이자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해법을 제시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 체계 확립과 전력망 확충 혜택의 전국적 공유 모델 구축 여부가 에너지 고속도로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 청년일보=이성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