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국제유가 급등으로 국내 경제에 이른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충격이 번질 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긴급 편성했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직접 지원과 에너지 비용 경감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경기 하방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31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6조2천억원 규모의 '중동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2026년도 추경안'을 의결했다. 올해 출범한 기획예산처의 첫 추경안이자, 지난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추경이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총지출은 본예산 727조9천억원에서 753조1천억원으로 25조2천억원 늘어난다. 여기에 국채 상환 재원 1조원이 별도로 반영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의 핵심 목표를 ▲고유가 대응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및 공급망 안정 등 세 가지로 제시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정부는 총 4조8천억원을 투입해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국민 약 3천580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추경에서 지급했던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유사한 방식으로, 신용·체크카드 포인트나 지역화폐 형태로 지원된다.
지원액은 소득 수준과 거주 지역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85만명은 55만~60만원, 차상위계층·한부모가정 36만명은 45만~50만원을 받는다. 나머지 소득 하위 70% 계층 3천256만명에게는 10만~25만원이 지급된다.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인구감소지역 거주자에게 더 많은 금액이 배정된다.
정부는 중동전쟁에 따른 충격이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단순한 취약계층 지원을 넘어 소비 여력을 유지하고 경기 둔화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가량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부담을 낮추기 위한 예산도 대폭 확대됐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과 유류세·교통비 부담 완화를 위해 약 5조원을 투입한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휘발유·경유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만큼 정부가 가격 상승 폭을 일정 부분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위해 K패스 환급률을 한시적으로 최대 30%포인트 높인다. 에너지바우처 수급자 가운데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가구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시설농가와 어업인에게는 유가 상승분에 연동한 보조금이 한시적으로 지급된다.
정유·석유화학 업계 지원도 포함됐다. 정부는 나프타(납사) 수급 차질에 대비하고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을 별도로 마련했다. 중동발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산업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방재정 역시 크게 늘어난다. 내국세 증가분에 연동해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약 9조7천억원 증액된다. 정부는 행정안전부와 교육부에 추경 취지에 맞는 민생·지역경제 사업 중심으로 예산을 우선 집행해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필요성을 언급했던 문화·예술 분야 지원도 추경안에 담겼다. 정부는 청년 콘텐츠 창업을 위한 모태펀드 출자와 문화예술 사업자 대상 저금리 대출 등 정책금융을 확대하기로 했다. 독립영화부터 첨단 제작 영화까지 제작 지원을 넓히고, 예술인 생활안정자금도 320억원 증액한다.
이 밖에도 청년 창업·일자리 지원에 1조9천억원, 재생에너지 전환 사업에 5천억원, 공급망 안정화 사업에 7천억원이 각각 투입된다.
추경 재원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마련한다. 정부는 반도체 수출과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세수 25조2천억원과 기금 자체 재원 1조원을 활용해 추경을 편성했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비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재정수지는 52조5천억원 적자로 본예산보다 소폭 개선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본예산 기준 3.9%에서 3.8%로 낮아진다. 다만 지난해 본예산 당시 2.8%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여야는 4월 2일 시정연설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오는 4월 10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고유가·고물가 상황은 소상공인과 청년 등 취약계층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어렵게 되살린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속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