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년, '현타온다'…청년이 멈춰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등록 2025.07.08 08:00:00 수정 2025.07.08 08:01:22
박이슬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지원금보다 중요한 건 실패해도 괜찮은 시간"

 

【 청년일보 】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어느 날 문득, 혼잣말처럼 툭 튀어나온 이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 한 잔으로 버티며 공부하고, 일과 후에는 영어나 자격증 강의를 듣는다. 때로는 공모전에 도전하고, 운 좋게 인턴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이 청년들의 보편화된 일상이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왔건만, 여전히 내 자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그 순간 마음속에 스며드는 감정. 바로 '현타: 현실 자각 타임'이다.

 

'현타'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절박한 신호로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열심히 노력했고,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으며, 묵묵히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감각, 혹은 뒤로 미끄러지는 듯한 불안감 속에서 청년은 "나 지금, 괜찮은 걸까?"라고 묻는다.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개인의 무력감이 아니라, 제도적 경직성과 무관심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많은 청년들은 "정책은 많은 것 같지만, 내 삶엔 별다른 변화가 없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창업 지원금, 월세 보조, 심리 상담, 일경험 프로그램 등 목록은 길지만, 그 안에 청년의 삶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 정책은 겉보기엔 풍부해졌지만, 방향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대부분 즉각적인 성과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청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지 몇십만 원의 생계비가 아니라, 삶을 재정비할 수 있는 유예의 시간이며, 무의미해 보이는 경험들이 언젠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청년 창업 지원 정책은 대체로 일정 수준의 계획서나 사업 아이템을 갖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성과 가능성을 먼저 입증해보라는 태도다. 그러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한 결과물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은 시도와 그 시도를 통해 배우고 돌아설 수 있는 시간이다. 바로 그 '멈춤'과 '시도'의 과정에서 청년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이제는 청년 정책의 관점을 전환해야 할 때다. '돈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실패해도 괜찮은 시간, 성과가 없더라도 자기 삶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 공백조차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책 말이다.

 

이를 위해 제안한다. 청년이 스스로 '지금은 잠시 멈추고 싶다'고 선언할 수 있도록, '공백기 승인제'를 도입하자. 자기 삶의 여정을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청년 삶 기록 플랫폼'을 만들어, 정책이 경력 중심이 아니라 삶 중심으로 작동하게 해보면 어떨까? 실험적 시도가 존중받고, 실패가 행정 언어 속에서 해석될 수 있도록 '청년 정책 실험실'을 도입해보기를 바래본다. 청년이 잠시 멈춘 그 자리에서조차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배워가는 중'임을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청년은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 일찍 완성을 요구한다. 자격을 갖추라 하고, 경력을 증명하라고 하고, 성과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흔들리고, 넘어지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청년은 등 돌림을 당한다. 그리고 그 순간, 말없이 "현타 온다"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말은 포기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 지금의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의 표현이다. 정책은 바로 그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현타가 온 청년에게 정책은 "괜찮아. 지금 멈춘 그 자리도 네 삶의 일부야", "실패했어도, 너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야", "그래서 우리는 너에게 단지 지원금이 아니라,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돈이 아니라, 존재가 존중받는 시간을 통해서, 그때 비로소 청년은 자기 발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청년 정책은 결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믿고 미래를 써나가는 과정이다. 그 믿음이 굳건해질때 청년은 오늘의 '현타'를 딛고, 내일의 '반전'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글 / 박이슬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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