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시의 한 마트에서 시민이 수박을 고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728/art_17521245739123_b12ae9.jpg)
【 청년일보 】 정부가 이달 21일부터 1인당 최대 45만원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하 소비쿠폰)' 지급을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유통업계 내부에서는 소비쿠폰을 '식자재 마트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하는 정부의 조치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약 12조원의 예산을 반영한 소비쿠폰을 지급할 방침이다. 소비쿠폰은 골목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매출 확대와 소비자들의 소비활동을 촉진해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유도할 목적으로 추진된다.
소비쿠폰은 일종의 지역화폐로 현금과는 달리 사용처에 제한이 있다.
소비쿠폰은 1차와 2차로 나눠 지급되며, 전 국민이 대상인 1차 지급에서의 기본 지급액은 1인당 15만원이다. 차상위 계층과 한부모 가족은 1인당 30만원, 기초생활수급자는 4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비수도권 거주 국민에게는 3만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농어촌 인구감소 지역에 살고 있는 국민에게는 5만원을 더 준다.
1차 신청은 오는 21일 오전 9시부터 9월 12일 오후 6시까지 카드사 홈페이지 및 애플리케이션(앱), 콜센터, 자동응답전화(ARS), 은행 지점 방문 등으로 진행할 수 있다. 자신의 '출생연도 끝자리'를 기준으로 신청하면 된다.
소비쿠폰은 연 매출액 30억원 이하의 전통시장·동네 마트, 식당, 옷 가게, 미용실, 안경점, 학원, 프랜차이즈 가맹점 등에서 쓸 수 있다. 다만, 대형마트 및 백화점, 전자 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배달 앱,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점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 가능처 안내문. [사진=행정안전부]](http://www.youthdaily.co.kr/data/photos/20250728/art_17521309241964_434120.jpg)
최근 당정은 소비쿠폰 사용처에 식자재마트를 포함하는 방안 검토에 나섰다. 지난 6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여당은 비수도권 식자재마트에서 소비쿠폰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처럼 정부가 '식자재마트'에서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자, 대형마트를 비롯해 SSM(대형 슈퍼마켓) 업계, 골목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불만을 제기하고 나섰다.
식자재마트란 매장 면적이 1천㎥ 이상 3천㎥ 미만이며,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유통 매장을 뜻한다. 일반 소비자들도 저렴한 가격으로 식자재나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 사실상 대형마트, SSM 등과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소비자들도 식자재마트를 기존의 대형마트와 SSM 등과 유사하게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한 20대 소비자는 "대형마트에 갈 시간이 부족할 때 주로 식자재마트를 방문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다"며 "크기 측면에서는 대형마트에 미치지 못하지만, 상품 구성 등은 대형마트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40대 소비자도 "식자재마트가 보통 전통시장 인근에 위치해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특정인 한 명이 인근 지역에서 여러 곳의 식자재마트를 동시에 운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소비자들의 반응과 같이 식자재마트는 최근 골목 상권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식자재마트가 식당 사업자 등에 저렴한 가격으로 식자재를 공급하는 유통채널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세를 키워 지역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심지어 이들은 매장 면적과 연 매출(1천억원)을 초과하지 않기 때문에 의무휴업일 등을 규정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규제도 받지 않아 사실상 '법적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의견도 많다.
즉, 식자재마트는 규모나 자본력 등에서 대형마트에 버금가지만 영업시간, 새벽 배송 등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아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식자재마트 주요 3사(장보고식자재마트·식자재왕도매마트·세계로마트)의 매출도 수천억원대로 올라섰다. 이들은 각각 지난해 4천502억원, 2천157억원, 1천24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각종 법적 제약으로 인해 대형마트 및 SSM 업계의 매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식자재마트가 이들의 매출을 일정 부분 흡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상황이 이렇자, 자영업자·소상공인, 대형마트·SSM 업계는 식자재마트를 소비쿠폰 사용처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우선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반발이 크다. 8일 소상공인연합회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에 식자재마트가 허용된다면 소상공인 경기 활성화와 지역 경제 선순환이라는 본래 목표를 훼손하고 정책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경기도의 한 전통시장에서 생필품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은 "상인들 사이에 식자재마트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다"며 "이번에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위해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 식자재마트가 포함된다면, 영세한 상인들의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전통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또 다른 상인도 "연 매출 30억원 이하의 매장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기준도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식자재마트에서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면 누가 이런 가게에 와서 물건을 사겠는가"라며 "비수도권에서도 식자재마트의 좋지 않은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대형마트와 SSM 업계에서도 당정에서 논의하는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정책 형평성에 큰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식자재마트가 사실상 지역의 식품, 생필품 유통을 담당하는 만큼, 당정에서 이러한 의견이 제시된 것으로 안다"며 "물론 이와 같은 지역이 비수도권에 많기는 하지만, 어떤 지역에는 한 곳의 대형마트, SSM이 앞선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소비쿠폰 사용처 기준 선정에 있어 정부가 보다 확실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유통업계에 정통한 한 학계 인사는 "소비쿠폰 지급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부가 밝힌 바와 같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매출 확대, 내수 진작에 있다"며 "하루하루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을 만큼 어려운 이들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러한 조치가 정말 필요하다면, 면밀한 검토 후 유통 인프라가 부족한 특정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며 "식자재마트가 대형마트를 위협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만큼, 정책 형평성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업계에 능통한 한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도 "업계, 소비자 모두가 이해하는 정책 입안이 중요하다"며 "정책의 취지 자체에 대해 공감하는 국민이 많은 만큼, 정책 목표가 실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식자재마트를 소비쿠폰 사용처에 포함한다면, 이와 유사한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대형마트와 SSM에서는 왜 사용이 불가능한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