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자녀 세대에 눈덩이 나랏빚 떠넘기는 나쁜 정치

등록 2021.09.02 18:00:00 수정 2021.10.29 20:13:30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내년 국가채무 1068조원···국가채무 비율은 50.2%, 건전재정 마지노선 붕괴
방만한 재정 운영이 원인···올 신생아, 고교 졸업 때 1억원 넘는 나랏빚 부담

 

【 청년일보 】 우리나라 가계, 기업, 정부가 떠안고 있는 '빚'은 얼마나 될까.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기준 국가 총부채는 가계 1843조2000억원, 기업 2021조3000억원, 정부 821조원 등 모두 4685조5000억원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4배를 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가 총부채는 올 1분기 기준으로 5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계, 기업, 정부 등 각 부문별 부채 증가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계부채는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 기업부채는 한번 터지면 도미노 현상처럼 기업 부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 대상이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빚, 즉 '나랏빚'이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경우 '버팀목'은 건전한 재정이기 때문이다.

 

나랏빚은 국가채무와 국가부채로 구분된다. 이 중 국가채무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내외에서 돈을 빌려 생긴 빚이다. 한마디로 국채, 차입금 등 지급 시기와 금액이 확정된 부채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 의무를 지는 것이다. 국가부채는 국가채무에 4대 연금의 부채, 공기업의 부채 등 미래의 잠재적인 빚을 더한 것으로 좀 더 넓은 개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국가간 재정 건전성을 비교할 때 사용되는 빚의 개념에는 확정 부채만 포함되고 비확정 부채는 제외된다.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나랏빚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국가부채가 아닌 국가채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항변한다. 이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국가채무 자체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일부에서는 통제 불능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의 중요함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지만 재정이 튼튼한 덕택에 164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재정이 뒷받침돼 가장 먼저 불을 끌 수 있었다.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면 이런 위기를 다시 맞을 경우 경제를 되살릴 '마중물'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국가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제의 기초 체력과 세입 기반은 약한데, 재정은 방만하게 운용됐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는 인기 영합적인 복지 지출과 국책 사업으로 재정적자가 일상화됐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지만 빚에 시달리는 가계와 기업은 이를 사줄 여유가 없어 외채에 의존한 국가채무가 급속히 늘었다.

 

외채 비중이 높아지면 작은 충격에도 자금이 회수되는 일이 잦아진다. 결국에는 높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위험성 높은 국채를 사주는 곳이 없게 된다. 이처럼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재원 조달이 막히게 되면 화폐 발행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는 화폐 발행은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환율 급등을 불러온다. 결국 국가부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이들 국가와 비교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가채무 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 국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수출입 변동성과 경상수지 적자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 미만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이유다.

 

지난 2015년 9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예산을 놓고 "국가채무 비율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던 40%를 깼다"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확정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영계획"을 보면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12조원 늘어난 1068조원에 달하고, 국가채무 비율은 47.3%에서 50.2%로 늘어난다.

 

이처럼 국가채무 비율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역대 정부가 상상도 못했을 만큼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7년 400조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물려받은 문재인 정부의 내년 본예산만 604조4000억원이다. 추경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5년 사이 50.9%나 증가한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32.5%)와 박근혜 정부(17.1%)의 임기 내 예산 증가율보다 훨씬 가파른 것이다.

 

국가채무 자체도 5년 만에 407조8000억원(47.3%) 불어나게 됐다. 이전까지는 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200조원 넘게 늘어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143조2000억원, 이명박 정부는 180조8000억원, 박근혜 정부는 170조4000억원의 국가채무가 증가했다. 

 

국가채무의 질(質)도 나쁘다. 금융성 채무 비중은 줄고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별다른 대응 재원이 없어 국민의 세금 등 국가 수입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는 2017년 374조8000억원에서 내년에는 694조4000억원으로 319조6000억원(85.3%)이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외국환평형기금 등 채무에 대응하는 기금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적고 재정 건전성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금융성 채무 증가폭은 같은 기간 88조5000억원으로 27.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랏빚은 매년 늘어 2025년에는 1408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가채무 비율은 58.8%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는 보수적으로 잡은 전망이다. 지금과 비슷한 속도로 예산이 확대되면 국가채무는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2023년 이후에는 재정 지출 증가율을 5% 이내로 억제하도록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명시했다. 우리는 세금으로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펑펑 쓸 테니 다음 정부는 씀씀이를 줄이라는 것이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정부, 구체적으로 말해 정권이 줄이지 못하면 법으로 막아야 한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중장기적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약 10개월이 지났지만 정부 발의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1억원이 넘는 나랏빚을 짊어질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도 지난 7월 국가채무의 급속한 증가를 한국경제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지적했다. 나쁜 정치가 현재는 물론 자녀 세대에게도 눈덩이 나랏빚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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