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내년 대선 '킹핀' 부상한 기본소득제···이재명의 꽃놀이패?

등록 2021.06.08 18:00:00 수정 2021.06.08 18:00:00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여야 없는 '때리기'에도 기본소득론 밀어 붙이는 것은 찬성 여론 노린 '정치적 셈법'
보편적 복지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워···국민 호주머니 털어 다시 채우는 조삼모사

 

【 청년일보 】 5번 핀은 삼각형으로 배열된 10개의 볼링핀 중에서 정가운데 위치해 있다. 흔히 스트라이크를 위해서는 맨 앞줄에 있는 1번 핀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1번 핀 뒤에 숨어 있는 5번 핀을 노려야 한다. 이를 '킹핀(kingpin)'이라고 한다.

 

킹핀은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핵심의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본소득제(基本所得制)가 내년 대통령 선거의 킹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일자리가 사라져 노동의 필요가 줄어드는 시기에 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주는 게 골자다. 거슬러 올라가면 15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에게서 그 아이디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근현대의 많은 사상가들도 유사한 개념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가 유명하다. '부(負)의 소득세'로 불리기도 하는 마이너스 소득세는 소득이 일정한 수준을 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내도록 하고, 이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 미달하는 금액에 비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조세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서서히 담론(談論)으로 등장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7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처음에는 황당한 주장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와 2010년대 들어 자동화와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일자리 감소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자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다.

 

정치판에서 기본소득의 '물꼬'를 튼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지난해 2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을 제안했는데, 여기에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사람의 제안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설계가 시작됐고, 곧 전(全) 국민 지급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전 국민은 가구 단위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복지는 곧장 핫이슈가 됐다. 현금복지는 그동안 포퓰리즘이나 황당 공약이라고 비판받기 일쑤였기 때문에 정치 담론으로 자리잡기 힘들었다. 하지만 적잖은 국민이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기본소득의 맛을 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6월에는 이를 두고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은 코로나 이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2017년 대선 출마 때도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끌어간 셈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논쟁을 본격적으로 확전시킨 것은 야당이다. 당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초선의원 모임에서 "물질적 자유를 어떻게 극대화해야 하는지가 정치의 기본 목표"라고 말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화두에 동참했다. 최근 이재명 지사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간 '설렁탕' 설전을 벌인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7일 '설렁탕집 욕하려면 설렁탕 전문 간판부터 내리시길'이라는 제하의 페이스북 글에서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는 국민의힘 정강정책 1조 1호를 끄집어 냈다.

 

앞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이재명 지사를 향해 "청년의 좌절을 먹고 사는 기생충"이라고 비난했고, 유승민 전 의원은 "사기성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이재명 지사의 말은 그런 비판이 국민의힘 정강정책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윤희숙 의원은 국민의힘 정강정책의 기본소득은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과는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의 보편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처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액수를 나눠 주자는 뜻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으로 어려운 이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넓고 포괄적인 상위 개념이라는 것이다. 보편과 선별의 경계를 분명히 한 것이자 재원 마련의 현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은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위험천만한 이야기라면서 "1년에 1인당 100만원 정도를 주기 위해 필요한 50조원을 증세 없이 예산 절감으로 조달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예산) 50조원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재원 조달 방안이 없다면 허구"라고 비판했다. 그는 "엄청난 예산이 들지만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안 되고 그 반대라는 분석도 있다"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은 돈을 나눠주면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될 리 없고 (오히려) 역진적"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정세균 전 총리는 "연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수령하는 입장에서는 월 4만원 정도인 반면 이를 위해서는 연 26조원이 필요하다"며 "가성비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이광재 의원은 "쌀독은 누가 채울 것이냐"고 반문했다. 결국 국민이 세금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뉘앙스다.

 

이 같은 정황만 보면 이재명 지사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지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려는 사람은 방법을 찾지만, 포기하는 사람에겐 이유가 수천가지"라고 썼다. 그러면서 "행정은 있는 길을 잘 가는 것이지만, 정치는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적 레토릭이지만 강한 전투 의지가 읽힌다.

 

이재명 지사가 여야 없는 '때리기'에도 기본소득론을 밀고 나가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6월 리얼미터에 의해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기본소득제 도입 찬반을 물은 이 여론조사에서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48.6%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는 응답 42.8%를 앞섰다.  

 

이 뿐만 아니다. 기본소득은 그동안 부동산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았던 분야다. 하지만 여야의 거센 비판 덕에 국민적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특히 여권의 대권주자 대부분이 이재명 지사의 반대편에 선 탓에 선두주자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는 사이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주택과 기본금융까지 공론화하며 이른바 '기본 시리즈' 3부작을 모두 궤도 위에 올렸다. 한마디로 '꽃놀이패'를 쥐게 된 셈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은 단기적으로 연 50만원(25만원씩 연 2회 지급)부터 시작해 중기적으로는 연 100만원(25만원씩 연 4회 지급), 장기적으로는 매월 50만원씩 연 600만원을 주자는 것이다. 재정 부담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1인당 연 100만원 정도는 우리 재정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그린 '뇌피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 '희망사항'을 담은 개인적 생각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재명 지사는 연 50만원을 지급할 때는 26조원, 100만원일 때는 52조원, 매달 50만원씩 지급할 때는 312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하면서 단·중기적으로 일반 예산 절감, 조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매월 50만원씩 지급할 때는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 부과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자 증세와 함께 부가가치세 인상도 거론되고 있다. 

 

결국은 증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증세 없이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이재명 지사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며, 나쁜 발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정부가 요구한 내년 예산 593조원 가운데 보건·복지·고용 예산만 219조원으로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가 절감하겠다는 일반 예산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조세 감면도 같은 맥락이다. 출산장려·지방분권 등과 같은 국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조세 감면인데, 이를 축소하겠다는 것은 기본소득을 위해 다른 국가 목표를 희생시키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낳고 있다. 

 

특히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사회보험, 공적부조, 사회수당 등 기존의 복지 혜택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은 거론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의 개념 가운데 하나가 의료보험·고용보험·국민연금 등을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그 금액에 상응하는 액수를 주자는 것인데, 이에 대한 입장 피력이 없다. 기존 복지 혜택을 유지하면서 추가로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면 나라를 거덜내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이재명 지사는 내년 대선까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내놓지 않은 채 본인이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본소득 논쟁의 주도권을 쥔 것 자체가 '은제 탄환'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은제 탄환은 서구 전설에 나오는 은(銀)으로 만들어진 탄환으로 어떤 일에 대한 만능 해결책을 의미한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제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당장 목전에 닥친 현안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정치적 꼼수다. 보편 복지를 시행하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이전으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을 두고 정치적 카드이자 국민 호주머니 털어 다시 채우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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