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미국 우선주의에 '강제 해법' 찾은 K-배터리 분쟁

등록 2021.04.13 00:00:00 수정 2021.04.13 09:02:18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LG와 SK, 전기자동차 배터리 둘러싼 오랜 소송 접기로 전격 합의
승리는 바이든 몫, 미중 패권 경쟁 시대 '확실한 지랫대' 고민해야

 

 

【 청년일보 】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자동차 배터리 기술의 영업비밀과 특허 침해를 둘러싼 분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두 회사는 지난 11일 총 2조원 규모의 피해배상에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Veto) 시한에 임박해 이뤄진 전격 합의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지 2년 만이다. 이에 따라 이미 ITC에서 결론이 도출된 영업비밀 침해 건 외에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던 특허 침해 소송도 중단된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글로벌 강자인 두 회사가 한 발씩 양보하며 분쟁을 타결함에 따라 'K-배터리'에 드리웠던 리스크도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양사의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12일 분쟁 합의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사업 성장 의지를 강조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이번 합의는 숱한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도전·혁신을 포기하지 않은 모든 임직원들의 노력·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은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0여년 간 투자로 쌓아온 배터리 지식재산권을 인정받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밝혔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전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합의를 통해 배터리 사업 성장과 미국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미국 조지아 공장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총괄사장은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설득 작업을 위해 지난달 하순 미국으로 출장을 간 후 아직 미국에 체류 중이다.

 

두 회사 CEO의 말을 들여다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지적재산권을 인정받은 것에,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 제거와 함께 투자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최선(最善)은 아니지만 차선(次善)은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느껴진다. 이들 회사 가운데 패자는 없지만 승자 역시 없는 셈이다.

 

사실 양사의 합의는 자발적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의 '물밑 압박'으로 막판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영업비밀 침해로 10년 간 수입금지 판정을 받은 SK이노베이션에 거부권 행사로 면죄부를 줄 수도 없고,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 공장을 뜯어 유럽으로 가게 놔둘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합의를 종용해 왔다. 

 

물론 더욱 큰 '그림'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대(對) 중국 봉쇄라인 구축에 나선 상태다. 외교안보에서는 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그리고 통상에서는 배터리ㆍ반도체 등 핵심 전략물자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ㆍ일본ㆍ대만을 잇는 핵심 전략물자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향후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칼자루를 쥐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조지아 공장과 일자리도 지키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양사의 분쟁 합의를 두고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평가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자신이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계획의 핵심이 바로 미래의 전기자동차와 배터리를 미국 전역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K-배터리 분쟁은 '강제 해법'을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일 '트럼프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예외적인 분야도 있다. 바로 미국 우선주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 공급한다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에도 행정서명한 상태다. 

 

미국 우선주의, 즉 자국 중심주의는 미국만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도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워 주변국들을 줄세우기 하고 있다. 이 같은 미중 패권 경쟁시대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등거리 외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 모른다. 한 때 유행하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도 시류에 맞지 않는다. 자국 중심주의와 강대국의 갈등에 속수무책으로 우려만 표하지 말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확실한 지렛대'가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할 때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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