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국군 섬멸' 미화 영화 논란···홍색 정풍운동과 굴종외교의 민낯

등록 2021.09.09 18:00:00 수정 2021.10.29 20:13:41
정구영 기자 e900689@youthdaily.co.kr

중화 민족주의와 결합한 애당·애국주의 교육의 산물 '소분홍'···K팝 등 한류 공격 선봉
영등위는 6·25 참전 중공군 영웅담 영화 허용···상영 취소됐지만 정부 공식 입장 없어  

 

【 청년일보 】 분청(憤靑)은 분노청년(憤怒靑年)의 약자다. 맹목적으로 애국하고, 광적으로 외국을 배척하는 중국의 청년세대를 이르는 용어다.

 

이 용어는 지난 1973년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 '분노청년'에서 나왔다. 사회에 불만을 갖고 급진적으로 변혁하려는 청년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파시즘을 능가하는 애국주의 홍위병(紅衛兵)을 가르키는 말이 된 것이다.  

 

홍위병이 '혁명 무죄'를 외쳤다면 이들은 '애국 무죄'를 외치며 2000년대까지 극성을 부렸다. 중국 내 지식인들로부터 분청(糞靑), 즉 '똥청년'으로 조롱당하면서 한 때 사그라들었지만 2013년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집권과 함께 부활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의 취임 일성은 확고부동한 자세로 공동부유(共同富裕)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인민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해결,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공동부유는 올들어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다시 부각됐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취임 당시 제시했던 것과 달리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제시한 '일부 사람을 먼저 부유하게 하라'는 선부론, 그리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의 경제발전 우선 정책에서 40여년 만에 방점을 옮긴 것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또는 종신집권을 앞두고 극심한 양극화에 불만을 품고 있는 서민과 대중의 민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시진핑 주석은 내년 말이면 두 번째 임기가 끝난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모든 최고지도자는 10년씩 집권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내년 10월 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개헌을 통해 이미 국가 주석의 3연임 제한을 폐지한 상태다.

 

이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진핑 주석에게 필요한 것은 체제 결속과 내부 단속이다. 그리고 이의 달성을 위한 최전선에는 소분홍(小粉紅)으로 진화한 분청이 있다. 소(小)는 젊다는 의미다. 분홍(粉紅)은 이들이 생겨난 웹사이트의 배경화면 색(色)에서 따온 것이다.

 

물론 전신이 있다. 자간오(自干五)다. 스스로 원해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의미다. 중국 정부 관리와 가족이 중심인 자간오는 2010년대 초중반 지식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장악했고, 2016년 이후에는 소분홍이 등장해 주도권을 잡게 됐다. 그래서 '인터넷 홍위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을 만들어낸 것은 중국 공산당이다. 지난 1989년 천안문 사태에 충격을 받은 중국 공산당은 중화(中華) 민족주의와 결합한 애당·애국주의 교육을 통해 21세기의 홍위병을 길러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홍위병이 국내 자산계급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면 소분홍의 타깃은 중국에 협력하지 않는 외국이다. 

 

이들은 신장(新疆) 위구르인의 강제노역으로 생산된 면화를 원료로 쓰지 않겠다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을 비판하는 국가와 인물에 대한 대규모 댓글 등 사이버 테러도 감행하고 있다. 한복, 김치, 삼계탕 등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문화공정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중국 당국은 빅테크 기업과 사교육 시장 등에 겨눈 내부 단속의 칼을 연예계로 돌리고 있다. 탈세, 고액 출연료, 이중국적 등을 명분삼아 대대적인 사정 정국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문화의 선악을 판단하는 문화숙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한류(韓流), 그 중에서도 K팝을 과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3일 중국 당국이 냥파오(娘炮) 등 불건전한 미적 기준을 결연히 근절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냥파오는 화장을 하는 등 여성스러운 남성을 지칭한다. 그뿐 아니다. 아이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팬들이 스타를 위해 돈을 모금하는 팬덤 문화도 금지했다. 그러면서 이런 근원에 K팝 등 한류가 있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소분홍이 한국 연예인에 대해 거침없는 비난과 댓글 테러를 벌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포털에서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 스타 팬클럽 계정 20여개가 한꺼번에 폐쇄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를 '홍색 정풍운동'이라고 부른다.

 

소분홍은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즉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청년 조직이 프레임을 짜서 외국을 공격하는데 활용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지난 2016년 이후 소분홍은 외국을 총 14회 공격했는데, 이 가운데 5회가 한국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도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남침이라는 전쟁 발발 경위와 한국민이 겪은 아픔은 안중에도 없다. 중공군 참전의 당위성만 강조하는 등 6·25 전쟁을 애당·애국주의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6·25 전쟁 참전 70주년인 지난해에는 금성 전투, 장진호 전투 등 중공군의 승리를 주장하는 영화를 대거 만들었다. 과거에는 이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후, 특히 소분홍이 여론전의 홍위병으로 나서면서 격화됐다.  

 

이 와중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지난달 말 중공군 영웅담을 담은 영화의 국내 상영을 허가했다. 중공군이 국군 5만명을 섬멸했다고 주장하는 금성 전투가 배경이다. 당시 국군은 병력 열세로 후퇴해 영토 193㎢를 내줬다. 중국이 한국군의 피로 물들였다는 금성 전투에서 대한민국 청년들은 국토를 한 뼘이라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럼에도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중공군과 미 공군의 전투 장면을 주로 다루는 등 국군 살해 장면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부 얼빠진 정치인은 이를 '표현의 자유'라고 강변했다. 그런 인식이라면 일본군이 독립군을 때려잡는 영화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할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상영은 취소됐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8일 "당사자(수입사)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지만 철회를 했다"고 말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꼬리는 내렸는데, 정부의 공식 입장은 표명하지 않는 모양새다.  

 

대중 외교와 관련, 중국은 총 한 발 쏘지 않고 사드 외교에서 한국을 굴복시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굴종외교의 민낯이다. 군(軍) 장성 출신인 신원식 의원은 "하다하다 이제는 6.25 전쟁까지 중국에 넘기기로 한 것인가'라며 굴종외교를 비판했는데, 국민 대부분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청년일보=정구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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