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데이터로 도시의 접근성을 측정합니다."
대학생 때 우연히 본 영상 한 편이 한 청년의 인생을 바꿨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음식점 하나를 찾기 위해 도로에서 몇 시간씩 헤매는 모습에서 '왜 그럴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된 질문은 5년간의 여정을 거쳐 대한민국 교통약자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이터 솔루션 기업 '윌체어'로 완성됐다.
청년일보는 지난 17일 교통약자 영역에서의 새로운 방식의 데이터 전환을 연구하는 기업 '윌체어'의 조준섭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우연히 마주한 문제, 데이터로 풀다"
조 대표가 교통약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대학교 공모전 준비 과정에서였다.
조 대표는 "주변에 장애인분이나 교통약자분이 계셨던 건 아니었다"며 "공모전 아이템을 찾다가 우연히 영상을 봤죠. 휠체어를 타신 분이 음식점 하나를 찾기 위해 한두 시간씩 헤매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에 그는 곧바로 장애인 교통약자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 장애인 인구는 약 260만명, 그중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절반인 130만명이다. 여기에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까지 합치면 교통약자는 무려 1천600만명에 달한다.
조 대표는 "조사해보니 이동성 자체는 개선되고 있었다"며 "장애인콜택시도 있고, 도로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데 핵심은 가령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잘 이동했어도, B지점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사업 초창기에 생긴 의문에 대해 설명했다.
조 대표에 따르면, 문제는 '정보'였다. 입구에 턱이 있는지, 내부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지 등 이러한 접근성 정보가 통합돼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고 그는 부연했다.
◆ 수기 조사에서 AI 기반 데이터 솔루션까지…윌체어의 단계적 '성장가도'
문제를 발견한 조 대표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직접 음식점과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설물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조사를 위해 들어간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고 조 대표는 언급했다.
그는 "당시 팀원 한 명이 '돈 필요하니까 만들어와라'고 하더라"며 "그래서 학교 사업단 교수님들 이메일을 다 따와서 '우리는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방법 좀 찾아주세요'라고 메일을 보냈다"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과정을 설명했다.
조 대표는 이러한 자금 확보 노력이 자연스럽게 사업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사업화 이후 그는 처음으로 진주 남강유등축제 구간 26개 업체 정보를 담은 책자를 만들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조 대표는 “책자를 접한 당시 진주시장이 ‘진주시 전체를 해보라’며 1천만원의 용역비를 제공했고, 이후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창원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하면서 프로젝트는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단계별로 미션이 계속 주어졌다"며 "작은 범위에서 큰 범위로 확장하면서 '데이터를 어떻게 모아야 하지?'라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었고, 그러다 보니 기술적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 고객의 목소리가 만든 '피봇' 과정
2020년 조 대표는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선정되며 본격적인 창업에 나섰다. 당시 챗봇 기술이 유행하던 시절, 그는 '작은시선'이라는 앱을 출시했다. 장애인 가족 단위를 타겟으로 음식점, 카페, 관광지, 숙박업소, 여행상품까지 묶은 종합 여행 서비스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약 50명에 그쳤다.
조 대표는 "많은 질타를 받았다"며 "확장 가능한 기술력, 인력 문제, 수익 모델 등 모든 게 공격 대상이었다.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견디던 그때 두 명의 '귀인'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멘토로 나서준 교수와 당시의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다.
멘토 교수는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사회 구성원이 공감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서비스가 아니다"고 조언했다고 조 대표는 설명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장(싸이월드 창업자)은 더 직접적이었다. 그는 "카페 한 곳, 한 지역만 먼저 해보고, 다른 지역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오면 그때 확장하보라"고 조 대표에게 조언했다.
이에 조 대표는 서비스를 전면 재구성했다. 실제 교통약자들이 원하는 건 여행이 아니라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편의시설 정보'였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현재의 '윌체어' 앱이다. 카페와 음식점 정보만 제공하는 단순한 서비스로 시작했지만, 한 달에 1천명씩 사용자가 늘어났다.
◆ B2C가 아닌 B2G…"진짜 '고객'을 찾다"
사용자는 늘었지만 수익 모델은 여전히 문제였다. 서버 운영비조차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때 조 대표는 '워크온'이라는 앱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워크온은 걷기 앱이지만, 러닝화 같은 커머스가 아닌 보건소에 데이터를 판매해 수익을 내고 있었다"며 "보건소는 시민 건강 관리를 레포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접근성 데이터를 만들고 있는데, '그럼 이걸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지?'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자체 예산을 파보니 스마트도시과, 복지과,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분들이 타겟이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윌체어가 B2C가 아닌 B2G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확신을 굳혔다고 부연했다.
◆ "데이터로 측정하고, 개선하고, 검증하다"
현재 윌체어는 '윌체어 SaaS'와 '윌체어 앱' 두 개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윌체어 SaaS는 지자체 담당자를 위한 대시보드다. 도시의 모든 건물을 데이터 기반으로 모니터링해 무장애 가게(가령 입구 턱이 없고 내부 공간이 넓은 곳) 현황과 도달률, 개선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기에 장애인 화장실, 주차장,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 데이터도 함께 제공한다.
핵심은 데이터 수집 방식이다. 웹상의 모든 이미지를 수집한 뒤, AI 이미지 센싱 기술로 필요한 10장 이내의 이미지만 선별한다. 건축물 대장 데이터를 활용해 일정 면적 이상의 건물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세종시의 경우 전체 상가가 4천여개, 건물이 4천여개에 달한다.
조 대표는 "공무원들은 '8천개를 다 조사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서도 "우리는 데이터로 판단해서 실제로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 300개, 주차장이 있을 곳 400개만 조사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윌체어에 따르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류하고, 선별하면 실제 작업량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윌체어 앱으로 전달돼 시민들이 무료로 활용할 수 있다. 앱에서 쌓인 고객 데이터(어디를 많이 가는지, 어떤 시간대에 이동하는지)는 다시 SaaS로 넘어와 우선 개선 지점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 '도달률'과 '무장애 지수'로 개선 방향 제시
윌체어의 경쟁력은 데이터의 신뢰성과 표준화에 있다. 조 대표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첫째는 정보 접근성 연구다. 조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화성시화 함께 진행한 연구에서 윌체어 앱의 이미지 정보를 제공했을 때 기존의 지도 앱 대비 정보 접근성이 50~60% 이상, 시설 접근성이 40~50% 이상 향상됐다. 실제 필드 테스트에서는 60% 이상 접근성이 개선됐다.
둘째는 '도달률'이라는 독자적 지표 개발이다. 도달률이란 일반인 1명이 갈 수 있는 가게 수 대비 교통약자 1명이 갈 수 있는 무장애 가게 수의 비율이다.
조 대표에 따르면, 일반 가게 대비 무장애 가게 비율은 보통 7~15%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달류로 보면 화성시 같은 신도시는 70% 가까이 나온다. 인구 대비 적정량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조 대표는 "우리는 무작정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우선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윌체어는 성신여대와 함께 지역별 '무장애 지수'도 개발 중이다. 도달률이 개선 지표라면, 무장애 지수는 도시 전체의 접근성 현황을 평가하는 지표다.
◆ AI 기반 업무 효율화…"서비스에 100% 집중"
조 대표가 공개한 지난해 윌체어의 매출은 약 3억원이다. 2020년 700만원에서 시작해 2021년 2천100만원, 2022년 1억5천만원으로 성장했다. 2023년 이후 매출 증가폭은 그키 않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라졌다. 외주 용역이 아닌 100% 자체 솔루션 매출로 전환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인력 구조다. AI 툴을 업무 프로세스에 적극 도입하는 등 기술 혁신은 통해 솔루션 유지 인원이 대폭 감소한 것이다.
관련해 조 대표는 "이로 인해 지금은 서비스에 100%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고 자신했다.
윌체어는 현재 30여개 지자체에 자사 솔루션을 납품 중이며, 지자체당 단가는 건물 개수에 따라 500만~1천500만원이다. 내년에는 60여개로 확대해 매출 6~7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 B2B, 하드웨어로 확장하는 3단계 전략
조 대표는 윌체어의 사업을 3단계로 구상하고 있다.
1단계는 현재의 B2G 영역이다. 지자체뿐 아니라 관광공사, 행정안전부 등 공공기관, 그리고 카카오, 네이버, 구글, 티맵 같은 지도 서비스 기업에도 데이터를 판매할 계획이다.
2단계는 B2B 구독 서비스다. 관광지나 문화시설 화장실에 붙어있는 '고장 시 연락처'를 QR코드로 전환하는 서비스다. QR코드를 찍으면 챗봇으로 고장 신고를 할 수 있고, 담당자는 실시간으로 접수받아 처리한다. 대학처럼 넓은 시설에서는 전화로 위치를 전달하는 데만 하루가 걸리던 비효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조 대표는 "QR 하나당 월 구독료 500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관, 지하철, 공항 등 모든 편의시설에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3단계는 하드웨어 영역이다.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수리업체를 중개하고 중개수수료를 받는 모델이다. 1단계 B2G 시장이 20~30억원, 2단계 B2B가 1천억원 규모라면, 3단계 하드웨어는 10조원 시장이다.
◆ 해외 진출과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 하는 윌체어…실제 사례로 증명되는 효과까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보면 내수 시장 규모가 큰 나라는 아니다. 전국 지자체에 솔루션을 확대하더라도 한계는 명확하다. 이에 조 대표는 다음 단계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그는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 선진국이 된 이유는 1970~80년대에 이미 초고령화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2042~2045년 사이에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는 나라들이 저희의 해외 확장 타겟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윌체어의 효과는 실제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화성시는 오는 2027년 장애인 전국체전 개최를 앞두고 무장애 도시를 만들기 위해 경사로 설치 사업을 진행 중인데, 윌체어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이 사례를 본 경기도 양평군도 윌체어 솔루션을 도입했다.
조 대표는 "기존에는 담당자 개인의 판단이나 민원에 의존해서 시설을 개선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기반으로 실제 필요한 곳을 명확하게 집어줄 수 있다"고 밝혔다.
◆ "세상의 모든 교통약자가 윌체어맵을 쓸 때까지"
인터뷰 말미에 조 대표는 항상 발표 때마다 하는 멘트를 들려줬다.
조 대표는 "세상의 모든 교통약자가 다른 지도 앱이 아닌 윌체어를 사용하는 그날까지, 세상의 모든 불편함 없는 공간을 연결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생 때 우연히 본 영상 한 편에서 시작된 질문이 5년 만에 대한민국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바꾸는 솔루션이 됐다. 수기 조사에서 AI 기반 데이터 플랫폼으로, B2C에서 B2G로, 그리고 해외 진출까지, 윌체어의 여정은 '데이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제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울러 조준섭 윌체어 대표는 "고객의 목소리를 1순위로 들어야 하고, 서비스는 무조건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같은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서의 응용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원칙이 윌체어를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원칙은 앞으로도 윌체어가 세상의 모든 불편함을 연결해 나가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